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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전환 & 피스빌딩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3. 15. 15:32
피스빌딩과 갈등전환
갈등전환은 피스빌딩(peacebuilding)과 함께 언급되거나 연구되곤 한다. (피스빌딩은 '평화구축'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국내에 아직 충분한 연구와 합의가 부족한 관계로 이 글에서는 그냥 피스빌딩이라고 쓰기로 한다) 이는 갈등전환 이론을 체계화시킨 존 폴 레더락이 피스빌딩 연구에 있어서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그는 두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평화갈등연구 영역에서 갈등해결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스빌딩을 함께 연구한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피스빌딩과 갈등전환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이해해야 하는지 전공자들조차 혼란스러워할 때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부분을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먼저 피스빌딩의 개념부터 정리해 보자. 피스빌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전통적이고 좁은 이해로 피스빌딩을 무장 갈등을 겪은 사회(post-conflict society)의 재건과 관련된 전략, 정책, 활동 등과 관련해 이해하는 것이다.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피스빌딩 이해는 여기에 가깝다. 이 이해를 따르면 갈등과 피스빌딩을 연결시키기가 쉽다. 조약이나 합의로 갈등 현안을 끝낸 후의 과정, 그렇지만 관계나 구조를 둘러싼 갈등은 남아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보면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전된 포괄적 이해로 피스빌딩을 무장 갈등에 대한 대응, 무장 갈등의 해결, 그리고 사회 및 공동체 재건을 넘어 안정적 평화의 성취까지를 포함하는 전략, 정책, 활동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무장 갈등 사회뿐 아니라 무장 갈등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도 적용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무장 갈등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도 다양한 폭력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포괄적 이해에 근거하면 갈등과 피스빌딩을 연결시키는 것이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다.
피스빌딩의 이해에 대해서는 리사 셔크(Lisa Shirch)의 개념 정리를 참고할만 하다. 그녀는 피스빌딩을 폭력의 예방, 갈등의 종결, 예방, 해결, 그리고 평화의 건설을 위한 모든 활동과 노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녀는 피스빌딩은 모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가능하고 구체적으로는 연구와 교육, 조기 경보 및 대응, 인도적 지원, 경제 사회 정치 개발, 사법 제도 정비, 그리고 갈등전환 등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나도 이 개념 정리에 동의하고 갈등해결을(물론 갈등전환이 포함된) 폭력을 없애고 평화를 성취하는 긴 스펙트럼의 중간에 위치하는 핵심 요소로 본다. 물론 갈등해결은 폭력과 평화를 다루는 과정 곳곳에서 생기는 갈등에 바람직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역할도 한다.
갈등전환의 제안
존 폭 레더락은 피스빌딩을 전환의 과정이자 방식으로 본다. 그는 갈등 현안, 관계, 구조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동시에 단기적, 장기적 접근을 포함하는 통합적 피스빌딩 모델(Framework for peacebuilding)을 제안하면서 이 모델이 갈등 이해와 대응, 그리고 피스빌딩 활동 개발의 기준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갈등전환과 피스빌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통합적 모델은 결국 갈등전환을 위한 피스빌딩을 제안하고 있는데 갈등 대응의 수준을 설명하는 수직 축과 활동 시간대를 설명하는 수평 축으로 구성돼 있다. 대응 수준에서는 갈등을 만든 문제와 함께 관계, 하부 체계, 그리고 사회의 큰 체계를 같이 다룰 것을 제안한다. 시간대에서는 위기 개입을 위한 단기 접근, 그리고 나은 위기 대응을 위한 교육과 훈련, 사회변화를 위한 구상,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를 동시에 염두에 둘 것을 제안한다. 다만 단기 대응은 몇 개월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바람직한 미래을 위한 계획은 2-30년을 내다보고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각 부분을 따로 또 같이 다루고 계획하는 통합적 접근을 통해 전환이 가능해지고 결국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이 모델의 내용이다.
통합적 모델이 얘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갈등전환과 피스빌딩 노력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환적 시각을 가지고 이뤄지는 피스빌딩이 결국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평화적 공존을 위한 구조와 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결국 갈등전환과 피스빌딩이 한 세트처럼 적용됨으로써 갈등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대응과 미래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통합적 모델이 애초 초점을 맞춘 것이 무장 갈등 사회, 또는 무장 갈등에 취약한 사회고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의 전환과 피스빌딩이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굳이 평화를 가치로 삼지 않는 사람들조차 평화를 절실히 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적 피스빌딩 모델은 무장 갈등과 상관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경우처럼 당사자들이 갈등을 해결하기 원하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이 굳이 평화 성취나 평화적 공존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은 사회에 말이다.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가능하고, 나아가 유효하다는 것이 그동안 집필과 강의를 통해 얻은 내 결론이다. 그것은 갈등해결을 단순히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불평등한 힘의 관계를 개선하고, 구조를 변화시키며,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켜 다양한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전제다. 물론 이것을 당사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갈등을 다루고 당사자들의 해결을 돕는 사람들이 이런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통합적 모델은 충분히 고려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물론 그런 적용이 가져오는 긍정적 결과는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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