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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산불 피해와 인간안보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5. 3. 28. 15:07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시간당 8.2킬로미터 속도로 확산했다. 28일 오전 5시 기준으로 산불 피해 면적은 총 4만 5,157헥타르에 달한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인 2만 3,794헥타르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 때문에 산불은 산림당국조차 예상하지 못한 수준과 범위로 확산했다. 인명 피해도 최대다. 28일 오전 6시 기준으로 사망 28명, 중상 9명, 경상 28명 등으로 총 6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산불은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의 대응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이번 산불로 다시 대응 장비와 인력의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특히 2019년 강원도 산불, 2000년 동해안 산불, 2022년 강릉-동해 산불 등을 겪은 후에도 거의 변화가 없는 장비 확충이 거론되고 있다. 산불 진화에 가장 중요한 소방 헬기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산불의 70% 이상은 헬기가 진화한다고 한다. 산불의 특성상 사람이 효율적으로 진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바람을 타고 급속히 확산하는 산불을 인간이 추격해 진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산불을 진화할 헬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결과는 당연히 막대한 면적의 산림 소실과 역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다.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 진화 헬기는 50대인데 정비 등의 문제로 이번 산불에는 30-35대만 투입됐다고 한다. 보유 헬기 중 30대는 담수량이 2000-3000리터인 중형 헬기고 11대는 담수량이 600-800리터에 불과한 소형 헬기다. 담수량이 5000-8000리터인 초대형 헬기는 7대 뿐이다. 그리고 헬기의 3분의 2는 도입한 지 20년을 넘어 노후화된 상태다. 진화 작업 중 추락한 헬기도 30년이 넘은 것이었다. LA 산불 진화 등에서 이용된 소방 항공기는 한 대도 없다. 소방 항공기는 담수량이 3만 5000리터 정도고 헬기에 비해 강풍이나 강우 같은 날씨의 제약을 훨씬 덜 받는다. 전문가들은 소방 항공기는 우리의 산악 지형에 적당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대형 헬기 확충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헬기 확충 문제는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되고 산림당국도 담수량 5000리터 이상의 대형 헬기 확충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2대를 확충하는 데 그쳤다. 대형 헬기 한 대의 가격은 약 500억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재부는 오래 전부터 봄에만 생기는 산불을 위해 값비싼 대형헬기를 구매하는 건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열악한 산불 진화 헬기 상황과는 다르게 우리 군의 헬기 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3년 2월에 발간된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육·해·공군이 보유한 헬기는 700대가 넘는다.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F-35A도 40대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F-35A를 순차적으로 들여오는 데 약 7조 7,700억원이 소요됐다. F-35A 한 대 가격은 1천억원 이상으로 알려졌지만 모든 비용을 합하면 한 대당 1,942억 이상이 소요된 셈이다. 군은 앞으로 20-25대를 더 들여올 예정이다.
이런 군비 증강의 결과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최상위 국방력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미국 군사력 조사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2025 군사력 랭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이 기관이 평가한 145개 국가 중 5위였다. 국방비 지출 순위로도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4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비 총지출액은 전 세계 11위였다. GDP 대비로는 2.8%로 영국(2.3%), 프랑스(2.1%)보다 높다. 다른 아시아권 국가인 대만(2.2%), 호주(1.9%), 중국(1.7%), 일본(1.2%)보다도 높다. 액수를 따져보면, 2020년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었던 국방예산은 5년 만인 올해 60조원을 넘어 61조 2,469억원이 됐다. 국방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약 9%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50조원이 넘었을 때도, 60조원이 넘었을 때도 마치 대단한 업적이라도 이룬 것처럼 자축하며 성과를 홍보했다. 한국처럼 작은 국가가 국방력과 군사비 지출에서 전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국방비 지출이 높다고 우리가 안전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국방비 지출은 주로 북한을 겨냥한 것인데 이는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 심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정권을 가릴 것 없이 지속되어 온 국방예산의 증가, 국방예산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막대한 국방예산에 대한 사회적 지지, 그에 반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높이는 소방 헬기의 부족 상황이 말해주는 건 하나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개인과 집단의 안전과 행복을 목표로 삼는 인간안보보다 국가의 영토와 경제적.정치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국가안보가 대세라는 점이다. 국가안보는 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안보는 국방예산의 지속적 증가, 국가를 우선시하는 정치 및 경제 정책, 개인과 집단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예산의 삭감 또는 집행 지연 등을 야기했다. 정부 재정이 풍족하지 않고 국민의 삶이 힘들 때조차 국방예산은 최우선으로 확보되고 심지어 증가했다. 지난 수년간 산불 피해가 확산하고 산림당국은 지속적으로 소방 헬기 확충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반면 최악으로 낮은 경제성장률과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국방예산은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므로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의 담론과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 우선이고 정부와 국민 모두 필요하다면 국방예산이라도 줄여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는 태도와 인식이 필요하다. 경제성장률은 낮고 재정 수입이 한정적인 가운데 사실상 우리가 줄일 수 있는 예산은 거의 국방예산 밖에 없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 대응 3차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국방예산 3,158억원이 삭감됐다는 점은 이것이 현실적인 접근임을 말해준다. 국방예산을 줄이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국가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방예산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건, 그리고 국가안보보다 인간안보를 우선에 놓는 건 절대 국가안보를 소홀히 하는 게 아니다. 인간안보에 초점을 맞추면 자연스럽게 국가안보도 같이 고려하게 된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무력 충돌을 피하는 데 초점을 맞춘 국방 정책이 세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국가안보’에 매몰된 채 남북대결에 초점을 맞추면서 군비 경쟁과 무력 충돌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접근이 절대 우리의 안전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방비는 줄여서는 안 되고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현재 우리가 지출하고 있는 국방비가 적정한 수준인지 따져보고 고민해봐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를 공론장에서 논의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 북한 전력 대응 차원에서 지출되고 있는 막대한 국방비는 한국과 북한의 전력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지속적 증가에 대한 설득력이 매우 낮다. 한 예로 2025년 기준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5위지만 북한은 34위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의 핵무기 전력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고 핵무기 대응은 어차피 미국의 핵전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실제 그렇게 되어 있다. 결국 우리의 국방비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지출이고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는 자명하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국방예산만 늘리는 건 경제적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무한 군비 경쟁만 야기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방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고 지출 규모에 대한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장 국방비를 줄여서라도 국민의 안전을 위한 소방 헬기를 확충해야 한다. 산불 대응이 코로나19 대응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F-35A 한 대보다 대형 소방 헬기 한 대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남북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게다가 F-35A를 북한에까지 침투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소방 헬기를 써야 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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