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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와 갈등전환 1-상호의존성과 갈등전환의 필요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0. 9. 16. 11:35
남북, 70년의 갈등 관계
갈등은 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관계가 있으면 공동의 문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관계의 질이 좋지 않으면 공동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수시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좋지 않은 관계로 인해 서로를 자극하고 부정적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남북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이런 조건들에 부합한다. 특이한 점은 직접적 접촉이 거의 없지만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 문제가 수시로 발생하고, 적대적 관계 때문에 갈등이 물리적, 언어적 충돌로 표출되고 대립으로 치닫곤 한다는 점이다. 이런 충돌과 대립은 남북대화로 적대적 관계가 완화되는 동안에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지난 70여년 동안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남북의 갈등은 1948년에 시작됐고 지금까지 7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남북 갈등은 국가 사이 갈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명시하고 있지만 그건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반공, 반북 정서가 반영된 것일뿐 사실상 북한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고 유엔에도 가입된 한반도 내 다른 국가다. 단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은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국가 사이 갈등은 우리가 흔히 대면하는 사회갈등이나 개인갈등과 다르고 특유의 복잡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갈등 이론과 시각을 통해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사실상 초기 갈등해결 연구는 국가 사이 갈등 및 무력 충돌의 예방과 평화적 해결 방식의 모색에 맞춰졌고 지금도 국가 사이, 또는 국가와 비국가 집단 사이 대립과 충돌이 중요한 연구와 실행 사례가 되고 있다.
남북의 갈등은 'protracted & intractable conflict', 그러니까 '오래 지속된 다루기 힘든 갈등'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언어는 갈등의 발생과 전개에 포함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특히 남북 관계의 특수성과 복잡성에서 비롯된 장기간의 대립을 '갈등'이라는 매우 정돈된 언어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갈등'은 장기간의 대립과 충돌 관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하고, 장기간의 문제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고민하는 시도를 할 수 있게 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남북의 대립을 갈등으로 보는 것에 불편함이나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고 적과의 대립은 당연하며, 적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적과 대화하는 것은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은 적대적 국가, 적대적 사회, 적대적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의할 때도 똑같이 쓰는 용어다. 무력이 동원되는 경우에는 armed conflict로 구분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적과도 문제의 해결은 필요하다. 갈등의 근본원인을 해결하는 시도 또한 필요하다. 이것은 상호 파괴는 피하고 상호 안전은 담보하기 위한 선택이다. 남북도 마찬가지다.
상호의존성과 갈등전환의 필요
남북은 오래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상호의존성은 갈등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것은 한 쪽의 문제가 곧 다른 쪽의 문제가 되며,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갈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특징이다. 상호의존성은 남북이 갈등 관계이자 대립적, 적대적 관계인 데서 비롯된다. 이로 인해 한 쪽의 행동과 태도가 다른 쪽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다른 쪽의 안전을 좌우하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상대에게 힘을 과시하고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남북 모두 군사적 힘을 포기하지 않고 군비 경쟁과 전쟁 준비를 계속했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상호의존성을 강화시켰다. 동시에 계속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18년의 남북 대화와 적대 관계의 완화는 상호의존성의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가 다른 쪽의 안전을 보장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남북의 오랜 갈등과 대립 또한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남북 갈등은 남북이 2018년의 관계로 복귀하고 관계가 더욱 진전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화협정이 맺어져도 마찬가지다. 남한과 북한이 정치체제가 다른 사회로 존재하는 한 말이다. 그렇다고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정치적 통일이 사회, 집단, 개인 사이 통일과 화합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북 갈등은 우리가 계속 마주해야 할 문제다. 다만 그 갈등을 어떻게 파괴적인 문제로 만들지 않을지, 갈등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최종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점진적으로 갈등을 완화시키고 마침내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들지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외면할 수 없는 갈등을 변화를 위한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고 그것은 가장 힘든 과제다.
갈등해결 연구에서 가장 진보하고 포괄적인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 이론은 남북 갈등의 근본원인을 파악하고, 점진적 해결을 위한 변화의 필요와 방식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시도를 하는 데 유용하다. 전환의 핵심은 현재의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와 상황을 끝내고 공동의 바람직한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 상황을 끝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통해 현재와 미래, 나아가 과거까지 동시에 다루는 것이 전환적 접근이다. 그것은 긴 성찰과 실행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갈등의 진원지를 파악하고, 발생과 전개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인을 규명하고, 변화를 위한 역량을 찾아야 한다. 전환을 위해서는 남북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성찰하고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구체적 지점을 확인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 그런 시도를 할 것인지도 논의와 고민의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 모두가 갈등 전환의 시각을 통해 접근하고 성찰하고 시도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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