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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갈등의 위기: 역지사지의 접근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0. 6. 23. 08:18
북한은 왜 분노하고 있나?
16일 북한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건물이 가지는 상징성이 처참히 내려앉은 것은 물론이고 폭파 장면 그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북한의 폭파는 국가 사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고 남북 역사에는 물론 세계 역사에도 기록될 만한 일이다. 북한이 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는지,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가운데 다양한 해석과 예견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아는 한 가지는 북한이 매우 분노하고 있고 남북관계에 기대를 접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렇게 남한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지난 2년을 돌아봐야 한다.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남북관계 복원 노력은 많은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며 12월까지 이어졌다. 10년에 한 번 열리기도 힘든 남북정상회담이 2018년 한 해에 세 차례나 열렸다. 세계사에 기록될 북미정상회담도 2018년 6월과 2019년 2월에 두 차례나 열렸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남북관계의 완전한 복원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세계는 북한의 비핵화 시작을 기대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남북정상회담은 많은 것을 남겼지만 돌아보면 판문점선언과 남북군사합의를 남긴 것이 거의 전부다. 물론 그것 자체가 엄청난 성과지만 남북 합의는 실현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1차 북미정상회담은 싱가폴 합의문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의 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미국 때문에 중간에 중단됐고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전체 상황을 보면 미국의 변심으로 북한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었다. 기차로 66시간에 걸쳐 하노이까지 간 김정은은 전 세계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훈풍은 거기서 끝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종전선언, 평화협정, 비핵화 절차 착수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작년 6월 30일 꺼진 불씨를 살려보려고 남한의 주선으로 북미 정상이 잠깐 판문점에서 만났지만 대한민국과 세계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을 뿐 내용은 없었다. 이 이벤트로 최대 수혜를 입은 것은 트럼프였고 문대통령 또한 중재자로 다시 한번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주고받기',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give-and-take다. 남북, 그리고 북미 사이 요란했던 정상회담과 관련된 많은 논의를 통해 각자 얻은 이익을 따져보면 북한이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훈풍을 타고 문재인 대통령은 큰 이익을 얻었다. 지지율은 높아졌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노벨평화상에 거론되기까지 했다. 세계 언론은 문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그때 얻은 이미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또한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하면서 보수 성향과는 다르게 전 세계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지도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또한 노벨평화상에 언급될 정도로 북한문제의 특수를 누렸으며 지금까지도 재선 캠페인에서 시시때때로 북한과 김정은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과 김정은은 어떤 이익을 얻었을까? 솔직히 얘기하면 거의 아무 것도 없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건 실질적으로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원한 것은 비핵화 절차를 통한 경제 발전인데 한 치도 진전이 없었다. 북한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고 경제 제재의 지속과 코로나19 상황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 비핵화는 분명 협상 사안이었고 주고받기를 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그 카드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했다. 반대로 남한과 미국의 지도자는 자신과의 정상회담과 북한 문제로 이익을 얻었으니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터질 일이고, 분노할 일이고,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부족한 살림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 몇 번의 정상회담을 했고, 전 세계에 북한의 어려운 모습까지 보여줬고, 최선을 다해 회담에 임했으며, 문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제약없이 15만 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까지 하게 해줬는데 말이다.
남북관계, 다시 과거로?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제사회의 룰을 따르지 않고 외교적으로 세련되지도 않았다. 적개심이 높아지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선정적이고 모욕적인 말로 상대국 정상에 대한 공격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런 방식은 스스로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상대의 관심을 끌고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선택하는 극단적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물론 상대적 약자의 행동이라 해서 공격적이지 않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할 점은 남북이 신뢰가 쌓인 관계가 아니라 신뢰를 쌓아가던 관계였고 기본적으로 언제든 서로 공격을 재개할 수 있는 대립적인 갈등 관계였다는 것이다. 70년의 세월과 적대적 관계는 정상회담 몇 번과 합의 몇 개로 변하지 않는다. 현재로선 종전선언도 평화협정의 체결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태니 더욱 그렇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도발이 계속된다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국방부는 북한이 남북군사합의를 깨고 군사행동을 할 경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남북이 강 대 강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대응이 도달할 종착지는 뻔하다. 바로 과거로의 회귀고 공동 몰락이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상황에서 정해진 답은 하나다. 우리는 2018년 이전의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되고, 현재의 남북관계 악화를 고착시켜서는 안 된다. 군사적 긴장을 높여서도 안 되고 북한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경제를 위해서도 안 될 일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하려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상대가 왜 화가 났는지, 왜 배신감을 느끼는지 알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고심해야 한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 비핵화 약속 이행을 요구하려면 그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절차를 고민하고 미국도 설득해야 한다. 남북군사합의 준수를 요구하려면 소극적으로 우리의 공격 부재만 정당화하지 말고 북한이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의 획기적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 외교관계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2018년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의 결과를 보면 남한과 미국은 많은 정치적 이익을 챙겼지만 북한은 그러지 못했다. 판문점선언에 명시한 '평화의 시대', '공동 번영',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을 점진적으로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말잔치를 끝내고 상호 이익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고민해야 한다.
남북 사이 갈등은 7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2018년의 훈풍은 갈등의 해결이 아니고 해결을 위한 대화의 시작이었다. 대화가 잘 이어져야 했는데 중단됐고 결국 각자 이익이 충족되지 않으면서 지금의 위기로 치달았다.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갈등의 악화 또는 완화, 해결 또는 재등장 등이 결정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군다나 장기적으로 평화적 공존을 추구한다면 어느 쪽이든 한 쪽은 대립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전향적인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쪽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강한 쪽이다. 그러니 기대한 이익을 얻지 못했고 그로 인해 화가 나 있는 북한에 기대할 수는 없고 결국 월등하게 나은 형편인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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