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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공존으로 '함께' 가는 길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9. 12. 27. 09:50
도라산역의 표지판
평화롭게 살 권리와 평화적 공존
2018년 12월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북측의 개성 판문역에서 열렸다. 남측의 정부 및 민간 대표들은 서울역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도라산역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역에 도착했다. 북측 대표들 또한 열차를 타고 도착했다. 남북 각각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침목 서명식, 궤도 체결식, ‘서울-평양’ 도로표지판 제막식 등이 진행됐다.
길을 잇는다는 것은 반목과 단절의 과거를 청산하고 이해와 교류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은 과거의 대립을 청산하고 평화적 공존으로 향해 가겠다는 남북의 다짐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착공식 후 2019년 말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북미회담과 국제 제재 같은 외부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남북 대화 또한 정체 상태에 빠져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결과 평화적 공존의 현재와 미래 또한 정체 상태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남북관계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잇달아 남북 공동 행사가 열렸던 2018년과 대조적으로 2019년은 너무 조용했다. 모든 것이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과 무기 경쟁은 여전하고 ‘평화의 시대’는 선언 속에서만 존재한다. 평화적 공존은 가까운 미래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남북의 평화적 공존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불가피하고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평화적 공존은 개인, 집단, 국가 사이 공격과 피해가 없고, 대화와 합의를 통해 의견과 이해의 충돌이 예방 및 해결되며, 평화적 관계가 지속되는 미래를 함께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가장 바람직한 남북 관계의 모습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평화적 공존이 정말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남북의 정치적 대화 및 협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존과 삶의 질 보장을 위해서다. 지금까지 한반도에 사는 모두는 평화롭게 살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왔다. 남북의 대립과 증오, 군사적 충돌과 상호 비방, 관계의 단절과 지속은 모든 사람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삶을 파괴하고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평화롭게 살 권리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도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다. 심지어 일시적으로 한반도에 머무는 사람조차 남북의 대결과 충돌로 인해 불안한 일상을 보내서는 안 된다. 그 권리를 보장할 가장 우선적인 책임은 남북의 정부에게 있고, 그 토대가 바로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다. 그러므로 평화적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적 공존과 평화롭게 살 권리 확보를 위해 남북 관계가 다시 얼어붙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함께’를 위한 역량의 형성
2019년 말 현재 남북관계는 안갯속이다. 일 년 전의 대화와 교류가 까마득한 옛일처럼 생각될 정도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남북 문제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반 시민이 관찰할 것도 ‘시청’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남북 문제는 전통적으로 정부가 주도해왔고 민간 교류가 거의 사라진 현재는 더욱 그렇다. 일반 시민은 정부가 만든 이벤트에 관찰자로 또는 시청자로 참여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건이 이어졌던 2018년에도 일반 시민이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공되는 컨텐츠가 다양하고 풍부했기 때문에 관찰자와 시청자에 머물면서도 마치 직접 참여하는 것처럼 만족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이벤트도 없고 제공되는 컨텐츠도 재미없는 뉴스뿐이니 관심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반 시민의 관심이 낮아지는 것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남북 관계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높아짐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 또는 북한과 관련된 뉴스는 계속 부정적이고 우리의 입장에 초점을 맞춘 뉴스는 대부분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상대로 묘사하니 말이다.
언제 걷힐지 모르는 안갯속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억지로라도 남북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단순히 관찰자와 시청자에 머무르지 않고 깊은 성찰과 비판적 분석을 통해 각자의 삶과 남북 문제를 연결시키고, 남북의 평화적 공존 필요성을 판단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참여자 내지 당사자로 스스로 역량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토론과 교육의 기회가 필요하다. 이벤트가 없을 때, 대화가 정체 상태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미래를 위한 준비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들의 역량이고 역량은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 그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토론과 교육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토론과 교육을 통해 할 첫 번째 일은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동 비전을 만드는 일이다. 남북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형태와 방법을 통해 가능한지는 여전히 대다수가 구체적 답을 가지지 못한 상태고 사회적 합의도 없다. 나아가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가 개인, 사회, 국가 차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계적 목표와 최종적 목표는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하는지 성찰할 기회조차 가져본 일이 없다. 물론 평화적 공존이 아니라면 다른 선택은 무엇이 있는지도 진지하게 토론, 성찰, 분석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평화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공동의 비전을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할 때다.
두 번째 일은 남북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확인하고 수행하도록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정부, 정치인, 전문가, 언론의 뒤꽁무니를 쫓고 그들이 제공하는 이벤트와 콘텐츠에만 반응하는 수동적 태도를 바꾸고, 자신의 삶과 남북 문제를 전혀 별개로 생각해 무관심을 유지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시민이 다양한 참여 기회를 요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비판적 감시자와 평가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 문제와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소수의 독점을 깰 수 있고, 다수가 함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시민이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가 성취되는 미래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을 목표로 설정했지만 과정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던 기존의 통일 담론이나 ‘평화’를 주장하지만 평화적 방식을 외면해온 것을 극복하는 것이 돼야 한다. 최근 이뤄지고 있는 평화통일교육이 그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통일’이나 ‘평화’ 어느 것도 당연한 담론 내지 목표로 수용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과 과정에서 직면할 도전을 고민하게 독려하는 것이다. 설사 그 결론이 당장은 평화적 공존이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고, 통일과 평화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런 성찰과 비판적 평가의 과정 없이는 시민의 역량이 키워질 수 없다.
방법론 면에서는 일반 시민이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교하게 계획되고 진행되는 토론과 교육이 필요하다. 정부나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의문과 필요에 답하고, 나아가 시민 스스로 필요에 따라 내용을 구성할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세대가 함께 생각을 나누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하며, 같은 시민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역할을 고민하게 독려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시민으로서 제대로 감시자, 평가자, 참여자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 수 있다.
일반 시민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변해도 시민은 그 자리에 있고, 시민만이 정당하게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시민이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원해야, 그리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주장해야 실제 그 모두가 성취될 수 있다. 평화는 소수의 주장이나 주도로 성취되지 않는다. 평화는 모두가 필요를 확인하고 함께 과정을 만들고 같이 갈 때 성취될 수 있다.
* 위 글은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잡지인 민족화해 101호(2019년 11/12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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