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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와 갈등전환 3-관계의 재설정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0. 11. 10. 15:10
관계의 재인식과 재설정
남북은 70년 이상 대립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북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단절할 수도 단절할 이유도 없다. 지리적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남과 북 모두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남북이 공유하고 동의하는 담론이자 목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남북은 그동안 통일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통일을 염두에 둔 신뢰관계를 만들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남북은 대립과 대결을 지속하면서 장기간 최악의 갈등을 겪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고 있다.
갈등 관계인 남과 북은 계속 싸우며 상대를 비난하고,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에 힘겨루기를 하고, 주변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갈등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점에서 남북의 적대적 감정과 대결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갈등 관계를 지속하는 건 불행하다. 해결이 필요한데도 노력하지 않는 건 더 불행하다. 우리가 70년 이상 남북의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도, 해결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도 않았던 건 우리의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 꼴이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관계와 상대에 대한 재인식이다. 갈등의 상대는 곧 대화의 상대다. 갈등은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 가능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건 갈등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거다. 물론 도중에 싸움이 생기고 대화가 중단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럼에도 대화는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싸움으로 상대를 멸망시켜 지구상에서 영원히 제거하겠다는 불가능하고 적대감만 강화시키는 생각은 되도록 빨리 버려야 한다. 관계의 재인식과 더불어 관계의 재설정도 필요하다.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는 보통 힘의 관계가 형성된다. 누구든 자기 힘을 키워 상대를 제압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갈등이 계속된다는 건 어느 쪽도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힘의 관계에 집착하거나 힘으로 제압하려는 시도는 버리고 상호 이해와 논의의 관계로 재설정하는 것이 갈등의 해결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다. 이 모두는 남북 관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상호의존적 관계와 공통 기반 설정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남북 갈등의 해결을 위해 북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어떤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우리사회에서 남북 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우리가 북한을 위해 '대화를 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을 위해 우리가 힘들어도 참고 북한의 도발조차 참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 인식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힘이 있고 그 힘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또한 남북 갈등의 해결이 우리보다 북한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필요한데도 우리가 북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왜곡된 인식에서 나온다. 남북 갈등을 인정하고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대화와 협상이 우리의 필요에 따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관계의 재설정이 가능해진다.
갈등전환이 다른 갈등해결 접근과 다른 점은 갈등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단계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거다. 관계는, 특히 단절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관계는 해결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해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다.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상호의존성이다. 남북 사이에도 당연히 상호의존성이 존재한다. 북한의 태도와 행동은 우리의 안보, 정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역시 북한에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더 발전된 나라기 때문에 북한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북한이 필요치 않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고 일방적인 억지 주장일 뿐이다. 특히 남북의 관계를 갈등 관계로 보면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관계의 재설정과 상호의존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공통의 기반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의 갈등, 분단된 집단이나 사회 사이의 갈등, 적대적 국가 사이에서의 갈등 등 모든 갈등의 해결을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공통의 기반을 설정하는 것이다. 갈등의 해결과 관계의 회복, 불안의 종식과 안전한 삶의 확보, 삶의 질 개선과 발전 등 고통스런 현재 상황의 종식과 미래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갈등의 해결을 정당화하고 서로 설득하는 공통 기반이 된다. 현재 남북 사이에서 공통 기반은 통일과 전쟁 없는 한반도 정도다. 경제에 대한 공통 기반 설정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로선 현실성이 부족해 보이는 통일에 대해서는 적어도 목표로서 공통 기반이 설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에 필요한 전쟁 없는 한반도, 다시 말해 전쟁 준비로도 서로를 위협하지도 않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서적 합의와 무관하게 적대적 관계의 지속으로 인해 공통 기반이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언어를 뒷받침할 실질적인 상호 노력과 결과가 없으면 공통 기반의 설정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상호의존성의 인정과 현재와 미래의 공동 변화를 위한 공통 기반의 설정은 이론상 원칙적인 것이므로 당연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첫걸음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북은 그조차 상호 논의와 이해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남북 갈등의 근본적 전환과 공동의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기초의 기초 시점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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