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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와 갈등전환 4-'적' 프레임의 전환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1. 1. 7. 11:06
북한, 경계의 대상? 협력의 상대?
정부는 통일교육을 평화.통일교육으로 바꾸어 실행하고 있다. 그 지침서 역할을 하는 건 통일교육원이 낸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이다. 이 문서 서두에 있는 '평화.통일교육의 목표'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 중 하나는 '균형 있는 북한관 확립'이다. 이것은 "북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북한에 대해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이지만 통일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협력의 상대로 인식하는 관점을 말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 아래에선 "분단 현실에서 북한은 같은 동포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인 이중적 존재라는 사실을 균형 있게 인식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적'이며 다만 우리의 목표인 통일을 위해 불가피하게 협력해야 하는 상대라는 얘기다.
이런 인식의 강조는 평화.통일교육 현장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교육을 받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북한을 적으로 알고 항상 의심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우선인 건지, 동포고 나중엔 통일을 해야 하니 협력을 모색하는게 우선인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북한과의 통일이 우선인지, 아니면 적대적 관계 유지가 우선인지도 모호하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가능한 건지조차 알 수 없다. 경계하면서 협력하는 건 거짓이나 위선이 될 수 있는데 결국 뒤에 총을 감추고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협력하자고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균형 잡힌 관점'을 빌미로 이런 모순적 주장이 이뤄지는 이유는 결국 '안보'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안보 프레임과 그것의 강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우리 정부에, 그리고 사회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국가안보가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적' 이미지 또한 강조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록 선언에 가깝지만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의 정착을 표명하고 있고, 어쨌든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국가안보 프레임을 상수로 놓고 그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적' 이미지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일은 끝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화'가 들어간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
북한, 갈등 해결의 파트너
갈등전환은 이런 모순을 극복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안목과 접근을 제공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적' 이미지다. 국가안보 프레임과 그와 관련해 무력 대결 및 경쟁이 강조되고 유지되면 '적' 이미지도 유지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적' 이미지의 강화와 유지를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에 '적' 이미지를 씌우는 건 포기해야 한다. 대신 우리와 풀어야 할 문제를 놓고 대립적 입장을 가진 갈등의 상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안보 프레임 대신 '갈등' 프레임이 필요하다. 남북이 갈등을 공유하고 갈등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남북 모두 어려움을 겪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갈등은 함께 해결해야만 하는 도전이고 현재 직면한 도전의 극복을 통해 각자의, 그리고 공동의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남북의 문제를 갈등으로 보면 북한을 '적'이나 '악'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이자 그야말로 협력의 상대로 볼 수 있다.
남북 문제를 갈등으로 보면 북한을 자기 입장을 가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갈등 상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갈등 당사자들은 자기 입장과 이익 추구를 정당화할 근거와 주장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당사자들에게는 생각과 주장의 간극을 좁히고 합의점을 찾기 위한 대화, 상호 이해, 공동 이익의 발굴과 모색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로 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갈등의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또는 그것을 핑계로 대화의 상대로 삼았다가 적으로 삼았다가 한다면 절대 갈등을 해결할 수 없고 상황만 악화된다. 국가 사이 갈등에서 상황의 악화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다.
특히 갈등전환에서 강조하는 관계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등의 악화, 그리고 해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 인식과 소통이다. 상호 인식이 낮고 소통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악화되고 해결에서 멀어진다.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을 향해 나아가려면 상호 인식을 최대화하고 소통을 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그것을 방해한다면 그 두려움과 의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규명하고 극복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상대를 경계의 대상과 동시에 협력의 상대로 삼는다는 이중적 태도와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갈등 프레임에서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태도와 행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남북 갈등의 완화와 해결에 기여하는 남북 관계를 만들어야 결국 평화적 공존이 가능해지고 평화적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릴 수 있다. 평화통일의 구호만 웅얼거리는 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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