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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둘러싼 사회갈등-박원순 미투와 관련해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20. 7. 14. 09:54
정의란 무엇인가
지난 며칠 동안 많은 사람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 같다. 이 말은 곧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엇이 정의인지, 그리고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개인, 집단, 사회에 따라 정의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정의 실현 방식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이런 이견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개인이나 집단에게 민감한 사건이나 상황이 생겼을 때는 대립과 갈등을 야기한다. 큰 사회적 사건이 생겼을 때는 한 사회가 거의 반으로 갈라지는 극심한 사회갈등이 야기된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차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듯이 말이다.
정의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실현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사법정의와 사법적 절차에 따른 정의의 실현이다. 한 사회에서 법은 보편적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에 거기에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법정의가 가장 바람직한 정의는 아니고 모두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법은 정의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일뿐 법전에 써있는 것을 넘어선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정의와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에게 1년 6개월이 선고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런 사법정의의 한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결국에 부족한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이 제정되게 하는 것이 사회정의다. 하지만 무엇을 사회정의로 판단할 것인지, 어떻게 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생기고 결국 사회갈등이 야기되곤 한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를 판단하고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골치 아프고 힘든 여정을 계속하는 것과 다름 없다.
정의를 둘러싼 사회갈등
최근 고인이 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성추행 고소를 놓고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사회는 또 다시 양분된 견해로 인한 사회갈등에 직면하게 됐다. 한쪽의 사람들은 사법정의를 내세운다. 가해자가 사망해 '공소원 없음'이 됐기 때문에 그것으로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없게 됐고 법치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법적으로 가해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란 말 또한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사망하면 수사가 되지만 고소를 당한 피의자가 사망했을 경우엔 수사가 종결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사법절차상의 편의와 비용 및 시간의 효율성을 위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법정의는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정의를 주장한다. 사법정의와 사회정의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법이 제정되고 기존의 법이 개정된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정의에 대한 담론이 많아지고 사법정의가 신속하게 그것을 따라잡아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입법기관은 게으르고, 사회는 분열돼 있고, 새로운 가치나 상식에 대한 토론은 부족하고, 거기에 더해 온갖 가짜뉴스와 막가파식 우기기가 판을 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일부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는 사회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성폭력에 대한 것이다. 누구도 성폭력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폭력과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그와 관련해서도 사법정의와 사회정의의 간극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신속하게 좁힐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법정의가 아니라 사회정의가 이뤄져야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 앞에서 선택을 거부당한 힘 없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법제도가 그 약자를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영 논리나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장 부적절한 방식으로 정의를 훼손하고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불필요하고 파괴적인 사회갈등을 만들고 악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다시 말해 사회정의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젊은 세대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것이 결국 정의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해결하고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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