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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와 정치.사회갈등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20. 3. 18. 11:30
갈등은 위기를 먹고 사는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은 묘하게도 총선과 맞물렸다. 대다수는 이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을 정치와 별개로 취급하고 함께 극복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정치인, 정당, 그들의 열성 지지자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이 와중에도 무조건 지지 또는 비난 댓글로, 그리고 노골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선거캠페인 기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 상황이 수년 동안 계속되고 있기에, 그리고 총선 이후에도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계속될 것이 우려되고 그것이 결국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정치인들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자신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다. 총선은 다가오고 선거 열기는 전혀 높아지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정당들과 출사표를 내민 그들에게는 운명을 좌우할 날이 눈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들은 또한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서로 근거없는 말과 비난을 주고받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우기기로 서로를 공격하기도 한다. 총선이 끝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질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과에 따라,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새로운 정치 싸움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고 그것이 코로나19 상황이 만들어낸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의 해결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갈등은 위기에 닥쳤을 때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인 갈등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위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세계 많은 곳에서의 내전이 정치 지도자들의 탐욕 때문에 생긴 것과 같은 원리다.
갈등은 변화를 위한 기회다
우리의 삶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여서 정치갈등과 그와 병행되는 사회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괴적인 정치.사회갈등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것의 파괴성을 줄이고 긍정적 변화를 위한 기회로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전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이다. 구성원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된다면 갈등은 사회 체계를 점검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갈등은 사회 체계를 후퇴시키고 나아가 치명적 타격을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이후에 가져올 정치.사회갈등은 아주 전통적이고 예측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총선 승리 여부에 상관없이 경기 침체, 개인소득 감소,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대응에 여당과 제1야당이 사사건건 충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전조는 추경예산 편성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다. 정부와 여당은 취약계층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 지출 확대에 초점을 맞췄지만 제1야당은 재정 지출이 아닌 '시장경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시나 '법인세 인하'와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을 주장했다. 영세사업자에 대한 부가세 감면 등도 주장했지만 역시 전통적인 감세와 기업 우선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번 추경에서는 대구 경북 지원을 대폭 올려 실익을 챙기는 차원에서 추경에 합의했지만 향후에는 재정 지출에 초점을 맞춘 추경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세에 들어서면 정치갈등에 맞물려 누구를 우선적으로 어떻게 지원할지에 따라 사회갈등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경제와 민생 문제 외에도 우리 앞엔 공공의료체계를 재점검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앞으로 계속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질병이 닥칠 것을 염두에 둔다면 공공의료체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탈리아가 속수무책으로 코로나19에 무너지고 있는 상황의 이면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폭 축소된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 결과 베르가모의 일부 병원에서는 병상, 의료설비, 의료진의 부족으로 선별 진료를 하는, 다시 말해 일부 환자를 포기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공공의료시스템 투자에 대한 것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진주의료원 폐쇄 사례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향후 이에 대한 논의에서도 정치갈등과 사회갈등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질본은 며칠 전 장기 대응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넘어선 진짜 장기 대응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새로운 질병의 재발과 타격을 염두에 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대응 방식의 변화가 포함돼야 한다. 그로 인한 정치.사회갈등의 발생은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파괴적 갈등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치갈등과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사회갈등, 그리고 총선 후와 코로나19 진정 후 수습 과정에서 계속되거나 새롭게 등장할 정치.사회갈등을 사회 변화를 위한 기회로 만들려면 지금보다 더한 집단 지성과 공존을 위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여전히 지리멸렬하고 자기들만의 싸움에 정신을 팔아도 말이다. 결국 무엇이 함께 사는 길인지 깊게 성찰하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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