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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은 있는가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9. 12. 5. 11:00
세대 갈등이라고?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황당한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자기만 안다" 등등. 40-50대, 심지어 30대 직장인들이 20대 신입, 또는 상대적으로 젊은 직장인들에 대해 하는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다르고 태도와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직장 내 세대 사이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바로 과연 '세대 갈등은 있는가?'이다. 갈등은 이미 여러 글에서 얘기했듯이 상호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불편함, 반감, 저항감 등을 드러낼 때 생긴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통해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세대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나 집단 안에서 상대적으로 나이 적은 세대의 불편함과 반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 제기나 저항은 더 잘 표출되지 않는다. 물론 누가 됐든 여러가지 간접적 방식을 통해 부정적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고 그를 통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갈등이 생기기는 힘들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힘이 적은 쪽이 노골적으로 불만과 불편함을 표출하고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일반적인 상황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대부분의 상황일 뿐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있다.
갈등 이론을 적용해 엄격히 따져보면 '세대 갈등은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갈등이 형성될 수 있는 비교적 균형잡힌 힘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상호 대립, 공격, 말싸움 등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갈등이 생기면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밀어붙이거나 행동할 수 없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잘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세대 사이 갈등이 만들어지는 환경이라면 오히려 긍정적이고 그런 곳에서는 적어도 속으로 문제가 곪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는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어느 한쪽이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굴복을 받아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와 대화하고 구체적인 이익을 놓고 협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세대 갈등'은 당사자들 사이에 정말로 만들어진 갈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분석되고 진단된 문제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세대 갈등이 문제인가?
이론적으로 '갈등'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세대 갈등'이 사회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와 관련해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대 갈등'으로 부르는 것의 저변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 이 문제는 대부분의 사회 현안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현안이나 방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담론, 이론, 주장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그러기를 원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팀정신을 키우기 위해 점심시간에는 팀원이 모두 같이 식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팀장의 주장은 그가 팀장이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 때문에 '적절성'과 '합리성'을 인정받는다. 동시에 그가 팀원이 아니라 팀장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고, 심지어 노동법을 어기는 것이어도 말이다. 사회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 더 힘이 있고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개인과 집단의 주장이 정당성을 인정받고 그외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면 다름의 인정이나 상호 이해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흔히 말하는 '세대 갈등'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조직이나 집단이 그 안에서 생기는 개인 사이의 문제를 '사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외면한다는 것이다. 공유하는 규칙이나 관례가 있는 직장이나 집단 내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나 대립은 순수하게 사적일 수 없다. 그들이 조직과 집단 안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관계를 만들고 그런 상황에서 문제나 대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조직이나 집단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세대 갈등'도 마찬가지다. 다른 세대 사이에, 또는 오래 일한 사람들과 최근에 입사한 사람들 사이에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집단이 다뤄야 할 문제다. 그런데 조직과 집단, 그리고 그 안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사적인 문제라며 외면해 버린다. 억지로 회식자리를 만들어 사적 관계를 맺으라고 강요하면서도 말이다.
세대 사이에 다름이 있고 그로 인해 삐걱거림이 생기는게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짜 문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일하고 상호작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다름의 인정과 상호 이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환경이다. 오히려 힘을 이용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같이'만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자신도 그런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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