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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공존의 과제평화갈등 연구/평화 2015. 5. 4. 03:30
평화와 공존의 과제
정주진
평화의 부재
올해는 한국전쟁 63주년, 그리고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전쟁은 평화조약이 아니라 정전협정으로 끝이 났다. 때문에 1953년에 끝난 한국전쟁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론 휴전 상태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개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남북 대립과 한반도 긴장 상황을 보도할 때 여지없이 “절차상 전쟁 중(technically at war)"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는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고 남북의 대립과 긴장은 언제든지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국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본 발제를 통해서는 정전 체제 하에서의 한반도 상황,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존의 과제를 평화학의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평화는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된다. 소극적 평화, 그러니까 최소한의 평화는 신체에 위협을 가하는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전쟁은 가장 극단적인 직접적 폭력이다. 그러므로 전쟁, 또는 전쟁 가능성의 부재는 소극적 평화의 달성을 의미한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지속적인 휴전 상태고 최근엔 남북 긴장의 연속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국지전의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소극적 평화조차 달성되지 못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남북을 막론하고 한반도 주민 전체가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면서 최소한의 평화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과 긴장은 한반도가 휴전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2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2013년 1월 22일 유엔 안보리의 2087호 대북 제재 결의,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무기 실험, 3월 7일 다시 유엔 안보리의 2094호 대북 제재 결의, 그리고 4월 9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이어져온 남북의 대립은 잠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사실 남북 당국자 회담 실패는 원점 회귀보다는 이전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의 신뢰 저하와 상황의 악화를 가져온 면이 크다. 지금의 남북 대립은 좀 더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서 시작됐다. 그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과 개성 관광은 중단됐다. 2009년과 2010년을 거치면서 남북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고 지난 정부는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상호 탐색이 끝나고 대화가 이뤄지는 듯 했으나 수년 동안 지속돼 온 남북 관계 악화와 신뢰 부재 상황을 대변하듯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북 관계는 사실상 단절되고, 남북 민간인들의 교류도 거의 침체상태에 빠졌으며, 그에 따라 군사적 충돌과 긴장만 날로 높아졌다. 2009년 11월에는 2002년 이후 7년 만에 서해상에서의 군사 충돌로 대청 해전이 발생했고, 특별히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2010년의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공격으로 민간인 희생을 가져온 연평도 포격은 남북 대치 상황을 보여준 극적인 사례였다. 지난 수개월 동안 계속된 남북의 대치와 군사적 긴장은 그동안 쌓인 대화 단절과 불신의 영향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한반도가 휴전 상태인 점을 감안한다면 남북 사이의 대치와 군사적 긴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이런 상황 하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고 반복되는 남북 대립과 긴장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별 동요 없이 무덤덤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0년 동안 굳어진 남북 각각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 그리고 군사적 대립과 상호 경계는 남북의 현실로 취급돼 왔다.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일상의 한 부분으로 고착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고 지내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우리의 현실에서 평화 부재, 또는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남북 긴장이 고조에 달할 때마다 정치적 긴장은 물룬 군사적 대립과 충돌까지 야기하며 반복적으로 위기 상태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안전의 부재
한반도 평화를 얘기함에 있어 언급해야 하는 또 다른 개념은 ‘안보(security)'다. 안보는 풀어 얘기하면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미지만 흔히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의 개념과 연결해 이해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사회에서 주로 군사력에 맞춰 발전된 국가안보 개념은 한국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해 오고 있다. 국가안보는 나라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던 유교의 가르침과 철학적 맥락을 같이하고,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한민족의 집단주의 문화와 소통하며,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충격으로 북한에 대한 증오와 대립의 사회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적응하며 강화돼 왔다. 국제사회에서는 국가안보가 군사력에 대한 초점에서 벗어나 경제력 및 외교력의 강화를 통한 국익과 국민 보호는 물론 국민 각자의 생존, 번영, 인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됐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안전 보장’이라는 전통적 접근이 강조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 속에서 국가안보는 여전히 남북 대립과 긴장 국면에서 군사력에 의존한 국가와 영토 보존에 맞춰져 있다.
국가안보가 국가와 영토 보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국민의 안전 보장이라는 민주국가의 실질적 목표는 부차적 목표로 치부되거나 담론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 전에 국가에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의 개념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 각자의 안전과 번영에 초점을 맞춘 보다 진보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을 발전시켰다. 인간안보 개념은 경제, 식량, 건강, 환경, 신체 보전, 공동체 유지, 정치와 관련해 개인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남북의 긴장과 군사적 대립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군사적 대립과 충돌의 가능성은 신체적 안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평화까지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은 모병제가 아닌 징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군 복무 기간 중인 청년들의 신체적 안전을 위협한다. 민통선 지역과 휴전선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신체적, 심리적 안전 또한 위협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애기봉 성탄 트리 점등 및 대북 삐라 살포 때문에 주민들이 받아온 피해가 구체적인 사례다. 금강산 관광 중 발생한 민간인 피격 사망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대립과 최근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으로 다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대립 또한 국민들의 신체적, 심리적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적 안전의 위협은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으로 인한 강원도 고성 주민들, 노동자들, 관련 사업주들의 어려움,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노동자들과 사업주들, 그리고 많은 납품업자들의 어려움을 통해 잘 설명될 수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 교류 및 화해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국가안보 논리와 정치적 긴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단돼 결국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안전을 위협하게 됐다.
평화의 부재, 또는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평화에 지속성이 결여된 불안한 평화는 모든 한반도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안전의 부재로 이어진다. 특별히 국민의 안전과 번영을 정치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하는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직면한 안전의 부재는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국민의 안전은 국방력의 증강으로 담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와 영토 보전에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에서 벗어나 포괄적인 인간안보 개념을 통한 새로운 안보 및 안전 접근을 통해 보장될 수 있다.
공존의 필요성
공존은 말 그대로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다. 남북은 좋든 싫든 지리적으로 이웃하면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 남북은 이런 지리적 공존을 넘어 여러 가지 이유로 의미 있는 공존을 이뤄야 할 불가피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 간혹 언급되는 남북 사이의 ‘적대적 상호 의존’은 남북공존의 불가피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북의 공존은 사상과 체제가 다른 현실을 외면하고 한민족이라는 동질성만을 강조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을 억지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공존을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남북 사이의 공존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들을 타개하는데 있어 필수적이고,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갈등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은 흔히 적대적인 관계인 것으로 이해된다. 남북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 역시 남북의 적대적 관계에 기인하고 적대적 관계는 다시 새로운 갈등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갈등의 정의를 살펴보면 갈등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상대가 포기, 굴복, 또는 협력 등 마음을 바꿔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갈등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은 언뜻 보면 상호 적대적인 것 같으나 사실은 상대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해야 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다. 남북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남북이 항상 상호 적대적이고 간혹 상호 이해적이기는 하지만 상호 의존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이 끊임없이 관계 설정을 모색하고, 적대적 관계의 변화를 주장하고, 대화 창구의 수립 또는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남북 사이의 관계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며 그 저변에는 공존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남북 사이의 공존은 대립과 충돌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이 여러 방면에 미치면서 갈수록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남북 정부가 공존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도 대립적 남북 관계로 인한 불안과 불편함이 곧 공존의 필요성을 반영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남북 사이의 공존은 가장 중요하게는 모두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앞에서 언급한 인간안보, 다시 말해 평범한 시민들의 안전과 번영, 나아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쟁과 무력 충돌의 위험이 사라져야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이 보장돼야 하며, 지속가능한 삶의 설계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집단적 경험을 통해 드러났듯이 남북 사이 정치적 긴장과 대립의 반복은 불안을 지속시키고 정치, 경제, 사회적 긴장을 높인다. 정치는 이념 논쟁에 매몰되고, 경제는 남북 악재에 주기적으로 노출돼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사회는 이념 갈등에 시달리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높아진다. 이런 정치, 경제, 사회 환경은 결국 모든 국민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미래에 대한 공동 구상을 방해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통제 사회인 북한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안전 위협의 수준과 빈도는 우리보다 덜 하겠지만 금강산 관광 중단과 최근의 개성공단 폐쇄 사례,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도 반복되는 남북 긴장과 대립이 야기하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공존의 필요성을 가장 역설적으로 절실하게 말해주는 것은 국방비다. 우리나라 국방비는 2000년에서 2011년까지 70% 이상 증가했다. 냉전 이후인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세계 강대국들의 국방비 예산은 13%에서 68%까지 줄었지만 우리나라 국방비는 최근 10여 년 동안 거의 2배 증가했다. 2012년 국방비는 33조 9,576억 원이었고, 올해 국방비는 4.2% 인상된 34조 3,453억 원이다. 2013년 전체 정부 예산 342조 중 10%를 조금 넘는 액수다. 올해 국방비는 그나마 애초의 예산에서 차기 전투기 사업과 같은 무기 도입 예산 1,500억 원이 삭감된 금액이다. 때문에 정부는 내년도에는 국방비를 더 늘리겠다고 이미 공언해 놓은 상태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무기 개발, 그리고 반년 이상 지속된 남북의 극한 대립 상태를 생각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명분도 충분하다. 2013년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2.59%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방비 예산 규모는 세계 12위 수준이고 무기 수입에 있어서는 세계 2-3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규모는 비교적 국방비 지출이 많은 이스라엘, 미국, 러시아 등보다는 낮지만 중국, 일본보다는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렇게 높은 국방비를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물론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이다. 실제 쓰지는 않지만 전쟁 및 무력 충돌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병력 유지와 무기 구입 및 유지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인도나 베트남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얼핏 봐도 북한은 인도나 베트남보다 형편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북한은 생존 문제에 대처하듯 국방비 지출을 우선시하고 있다. 2013년 북한의 국방비는 전체 정부 예산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국내총생산의 25%에 달하는 액수다. 남한의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2.6%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국방비는 지나치게 높다. 그러나 남과 북의 경제 규모가 30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남과 북의 국방비 격차는 5배가 넘는다. 북한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이유 또한 남한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이다. 북한은 눈앞의 생존을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북한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국방비 지출을 대폭 줄이거나 국방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남북 공존의 필요성은 전 세계적으로 최근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사이버 테러,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의 증가와 질병의 확산 등과 관련해서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예측불가능하고 상상 이상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와도 최소한의 협력 관계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과 북 모두 현재로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는 관계 개선과 공존을 모색하더라도 남 또는 북과는 관계 개선 노력을 하지 않을 기세다.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다.
공존의 현실적인 필요를 얘기하자면 남과 북 모두 대립을 통해서는 장기적으로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는 것이다. 적대적 관계의 강화와 대립의 지속은 북에는 생존을 위협하고 남에는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문제가 된다. 특히 남한은 긴장과 대립을 높이는 북한에 대응해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은 남한에게는 치명적이다. 개성공단 문제는 남한 경제와 사업주 및 노동자들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부담이 큰 일이다.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상봉 문제도 정치적,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생존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는 북한의 이익은 접어두고 남한의 이익만 따져본다 해도 공존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적대적 관계의 강화로 북한과의 대화 통로를 차단하면서 북한의 행동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 대화 통로를 유지하면서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과의 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공존의 모색
남북 관계는 정부 주도적이다. 지난 60년 동안 남북 대립과 긴장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항상 대북 관계를 주도해 왔고 국민 여론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것은 남북의 적대적 관계와 이념 대립이라는 상황 하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없는 경직된 정치적, 사회적 환경 때문이다. 어느 국가에서건 국제관계를 주도하는 주체는 정부지만 우리의 상황에서는 독재 정권, 보수 정권, 진보 성향의 정권에 따라 대북 관계의 원칙과 대응 방식에 있어 기복이 심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남북 긴장과 대립에 따른 안전의 위협 외에도 기복이 심한 남북 관계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불안과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므로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에 의한 국민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주도의 남북 관계에서 국민 여론과 합의가 포함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남북 관계는 국가와 영토의 보전에만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가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 번영, 행복에도 기여하는 인간안보의 개념을 포함해 수립돼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방식의 변화는 한반도에서 남북의 평화적 공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남북 공존의 모색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대화의 재개와 남북 관계의 복원이다. 6월 초 무산된 남북 당국자 회담은 지난 4년 동안 단절된 관계와 상호 신뢰의 부재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최우선적인 일은 없는 신뢰를 만들고 그 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고 효과적인 일 중 하나가 대북 인도적 지원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김대중 정부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07년 3,488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2008년에는 438억으로 대폭 줄었고 이후 점차 줄다가 2012년에는 23억 원이라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 정부 때는 인도주의에 입각해 활동하는 대한적십자사조차 대북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민간단체의 지원 또한 같은 길을 걸었다.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은 김대중 정부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04년에는 1,558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07년에는 909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대폭 줄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131억 원, 2012년에는 118억 원에 불과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6월까지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0원이고 민간단체의 지원도 유진벨 재단이 6억 7천만 원 상당의 결핵약을 지원한 것이 전부다. 지난 정부 이후 민간단체들은 남북 양쪽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 방문 불허, 물자 반출.입 불허로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9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던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지원은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단행된 ‘5.24 대북제재 조치’로 거의 고사 상태가 됐다. 민간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도 2010년부터 중단됐다. 그 결과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사업은 대폭 축소되거나 중단됐고 일부 단체들만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고 있는 상태다. 정부와 민간차원 모두에서 대북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핵무기 포기를 선결 조건으로 내건 우리 정부의 결정과 북한의 대응이 맞물려서다.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포기하다시피하고 민간단체의 지원조차 막거나 독려하지 않은 것은 전략적 실수다. 인도적 지원은 원칙적으로 정치적 목적 없이 이뤄진다. 그러므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관계에 상관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춰 이뤄진다. 그럼에도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효과를 낸다. 특별히 남과 북처럼 공식적인 관계가 단절되고 신뢰가 소멸된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은 공식적 관계와 신뢰의 재개가 필요할 때 접촉 및 대화의 명분과 핑계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인도적 지원은 적대적 또는 비우호적 관계의 국가들이 비공식으로나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의도와 현안을 숨긴채 ‘인도적’ 관심의 표명이라는 핑계로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재 관계 복원과 신뢰 회복을 위한 아무런 수단도 없는 우리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도적 지원이다. 인도적 정신보다 정치적 목표가 앞선다면 인도주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어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 우선적 목표가 된다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정치적 효과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당장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거나 늘릴 수 없더라도 차선책으로 민간단체의 지원을 허락하고 적극 독려까지 해야 한다.
공존의 모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들의 관심이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정부 주도로, 그리고 주로 정치 공학적인 접근을 통해 해석됐다. 지난 6개월 이상 계속된 남북 대립과 무력 충돌의 위험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안전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 과정에서도 많은 사업주들과 노동자들의 이익이 고려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어려움은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6월 초 남북 당국자 회담이 무산됐을 때도 손에 땀을 쥐며 회담만 바라보고 있던 개성공단 관계자들과 이산가족들의 반응은 뉴스 보도의 한 귀퉁이 장식 정도로 취급됐다. 안타까움과 절망을 토로한 많은 국민들의 반응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거나 별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편으로 남과 북 정부 모두에 대한 불신이 담긴 반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과 남북 관계를 경험한 데서 나오는 의도적인 무관심이다.
공존의 모색은 정부도 시민단체도 아닌 평범한 국민들 사이에서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국민들의 관심, 감시, 비판 등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시민단체의 활동에 반영되며,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정책 방향과 구체적 방법의 탐구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현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공약을 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 정부 내 사람들과 집권당이 남북 관계로 인한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필연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것을 국민의 안전 및 번영과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남북 관계 개선과 대립 완화는 남북 사이의 대립과 긴장으로 불안과 불편함이 많은 국민들이 더 열심히 모색해야 한다. 남북 관계를 지금까지처럼 모두 정부와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놓고 관심을 두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위의 글은 2013년 7월 12일 강원대학교 <정전 60주년 DMZ 심포지엄> 주제 발표문입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와 저자를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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