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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폭력과 녹색평화평화갈등 연구/평화 2015. 5. 4. 03:00
일상의 폭력과 녹색평화
정주진
들어가는 말
평화란 무엇인가? 흔한 질문이지만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시각에서 평화는 자칫 진보주의자들의 정치적 이념 구현이나 현실도피주의자들의 이상적인 세계를 압축하는 상징적 언어의 하나로 취급되기 쉽다. 학문적인 시각에서 평화는 전통적인 연구 영역이 가치 지향적이거나, 또는 영역 구분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도외시했거나 적극적으로 채택하지 못했던 현안들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아류적인 연구와 현장 적용을 설명하는 신개념어 중 하나로 취급되기 쉽다. 전쟁의 예방과 평화의 비전, 무장 갈등(armed conflict)과 형식적(formal) 평화의 성취, 피스빌딩(peacebuilding)과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 무장 갈등 사회의 평화와 개발 등이 바로 그런 현안들이다. 대중적 시각의 오해와 학문적 시각의 모호함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 평화는 전문 연구 영역의 확립과 연구 인력의 확대로 독립적이고 차별적인 연구와 담론의 중심 가치 및 현실적 목표로 부상했다. 평화는 그 자체로 학문 및 대중 영역의 실천 목표가 되고, 담론 제기 및 문제 해결 과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달성된 목표 및 결과의 질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평화가 가치를 내포한 실질적 용어로써 묵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일상적 담론 형성에 대한 기여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평화가 일상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의 성취를 목표로 하는 접근법과 과정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화의 부재를 야기하는 폭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실질적으로 제거할 담론과 실천의 모색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칫 대중적인 목표에만 치중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실상은 학문적 평화연구의 목표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평화연구가 이론의 창조와 실험에만 몰두하지 않고 상시적으로 이론의 현장 적용과 평가를 병행하면서 연구를 통한 사회 변화, 다시 말해 평화의 실현(realization)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담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평화는 인간의 생활과 생존을 위한 기본 필요이자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평화의 부재를 야기하는 폭력이 인간의 생활을 위협하고 생존을 해치는 현실적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인간의 생활과 생존에 불가피한 요소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평화와 폭력에 대한 이해의 공유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평화와 폭력의 이해에 있어서 오해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면 평화의 현실적 필요성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녹색 평화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녹색 평화의 부재를 야기하는 일상적 폭력 범위 설정을 위한 이해의 공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우선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평화와 폭력의 확대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평화와 폭력의 기본 개념을 일상적 평화 및 폭력의 현안과 관련해 재해석하는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한정적이 아닌 포괄적인 평화와 폭력 개념의 제시를 말한다. 이런 접근을 통해 평화는 인간의 생활과 생존에 있어 불가피한 요소로, 폭력은 인간의 생활과 생존을 위협하는 도전으로 다뤄질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룰 다음 주제는 일상의 폭력이다. 평화연구에서 폭력의 연구는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가 될 때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일상적 폭력을 규명하고 분석하는 것은 일상적 평화를 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별히 이 글에서의 일상적 평화는 녹색 평화라는 개념 하에서 논의되어야 하므로 일상적 폭력의 규명과 분석이 녹색 평화 논의의 전제가 될 수 있도록 폭력 현안에 대한 선별적 접근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서 다루게 될 녹색 평화는 녹색과 평화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이냐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가 될 것이다. 녹색 평화에 대한 담론이 형성돼가고 있는 과정에서 이것은 녹색에 평화를 결합시킬 것이냐, 또는 평화에 녹색을 결합시킬 것이냐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녹색이 무엇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에 상관없이 평화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학문적 토대 위에서 녹색을 논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시도가 이뤄지든 이 글의 전반을 꿰뚫는 핵심 방향과 궁극적 목표는 평화를 실현시킬 인간관계와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고, 그것을 녹색이 지향하는 것과 결합시킬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제1장 평화와 폭력
1. 평화와 폭력의 확대
먼저 평화와 폭력이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상반되는 개념부터 다뤄보고자 한다. 눈과 귀에 익숙한 용어지만 이해에 있어서는 사용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폭력에 대한 이해의 간극은 어떤 상황을 평화와 폭력으로 규정할 것이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과정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간극은 대중적 담론에서는 이해의 차이로 단순하게 처리될 수 있지만 학문적 담론에서는 평화와 폭력 연구의 토대에 관한 것이므로 신중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평화는 보통 ‘전쟁의 부재’로 이해됐다. 그러나 이제 평화는 인간 생명의 상실은 물론 인간 능력의 상실도 방해하지 않는 사회 환경으로 이해되고 있다. 평화는 신체에 대한 해를 막음은 물론 사회 구조와 인간관계를 변화시켜 삶을 방해하고 삶의 질을 낮추는 모든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성취된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는 ‘소극적(negative) 평화’와 ‘적극적(positive) 평화’로 구분된다. 소극적 평화는 전쟁이나 범죄 같은 신체와 생명에 피해를 입히는 직접적(direct) 폭력이 없는 상황을 말하며 군대나 경찰 같은 지배적 힘에 의해 평화가 부과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폭력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가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모순적인 현 상황(status quo)의 유지에 기여한다. 소극적 평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흔히 전쟁, 군사주의 등을 지속시키는 억압적 사회 구조에 의해 유지되며 현재, 또는 단기적 상황에만 관심을 둔다. 소극적 평화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호의존의 강화, 무력대결과 물리적 폭력의 억제 등으로 달성될 수 있으나 이것이 반드시 군사주의와 직접적 폭력의 포기 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극적 평화가 과정적 목표가 아니라 궁극적 목표가 되는 사회 환경에서는 적극적 평화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
적극적 평화는 인간 삶을 억압하고 삶의 질을 낮추는 모든 억압적 사회 구조와 그것을 용인하는 모든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통해 달성된다. 공정한 사회 구조,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 공정하고 공평한 참여 환경이 형성됨으로써 성취되는 적극적 평화의 상태에서는 개인의 능력 발휘, 자유, 평등, 참여, 기회 등을 막는 어떤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 사회, 국가의 발전으로 얻는 혜택을 공동으로 누리는 환경이 형성되고, 거기에 개인의 노력이 더해지며, 전체적으로 삶의 질이 향상된다. 이런 적극적 평화는 비현실적이며 구성원들의 힘의 관계에 기초한 사회 구조의 경직성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목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별히 냉전 시대에는 억압적 사회 구조의 변화를 통한 적극적 평화의 달성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 설정보다는 전쟁 위험의 감소, 핵무기 확산 금지, 우발적 전쟁의 예방 등 실질적 결과를 낼 수 있는 소극적 평화 노력이 더 유효하다는 의견이 팽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극적 평화라는 목표 설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평화연구자들은 진정한 소극적 평화의 달성 역시 군사주의와 무기경쟁을 옹호하는 사회 구조와 제도의 변화 없이 달성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결국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는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의존적이며 각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상호 지원의 구체적 효과가 나타난다.
평화 성취의 내용은 폭력의 이해에 의해 보다 자세하게 채워질 수 있다. 폭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의 부재다. 그러나 이것은 직접적 폭력에만 국한된 이해다. 앞서 언급한 억압적 사회 구조는 구조적(structural) 폭력 개념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 구조적 폭력은 억압적 사회 구조를 만드는 정책, 법과 규제, 규칙, 제도, 기관, 관례 등을 도구로 삼아 발생한다. 직접적 폭력처럼 당장 신체적 해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인간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삶의 질을 낮춘다는 점에서 보다 침투적이고 지속적이다. 구조적 폭력을 만드는 억압적 사회구조는 거시적 차원에서 군사주의와 무기 경쟁을 정당화해서 소극적 평화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미시적 차원에서는 기회의 박탈, 자유의 억압, 참여의 제한, 차별적 대우 등을 통해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생존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구조적 폭력의 영향은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구조적 폭력은 억압적 사회 구조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주체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 법과 제도, 규칙, 기관, 관례 등에 의해 유지되고 강화된다.
종교, 사상, 언어, 예술, 과학 등이 폭력의 수단이 될 때 발생하는 것이 문화적(cultural) 폭력이다. 문화적 폭력은 직접적,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며 직접적, 구조적 폭력의 모습을 선명하게 하고 두드러지게 한다. 종교, 사상, 언어, 예술, 과학 등은 인간의 내적 세계관과 정체성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그것들이 문화적 폭력의 도구가 될 때 개인 및 집단은 세계, 국가, 사회에 대한 이해, 인간관계의 설정, 선과 악 및 진실과 거짓의 구분에 있어 왜곡된 판단 기준을 갖게 된다. 인간 상호 작용에 의해 계속 재생산되는 사회 담론도 현 사회에서는 문화적 폭력의 주요 수단 중 하나가 된다. 대부분의 사회 담론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평등한 참여가 아닌 일부 엘리트 계층 또는 적극적 여론 형성자들의 주도로 생산되지만 그 영향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 미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왜곡된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들에게 사회 담론은 유용한 문화적 폭력 수단이 된다. 문화적 폭력은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직접적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폭력보다 영향력이 크다. 구조적 차원에서의 군사력 강화 정책과 직접적 차원에서의 무력 충돌 및 전쟁의 발생, 구조적 차원에서의 친기업 정책과 직접적 차원에서의 노동자 폭행 및 억압, 구조적 차원에서의 성차별 정책과 직접적 차원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행 등이 모두 무력에 의존하는 왜곡된 평화 담론, 자유시장 경제 이론, 가부장적 사상과 언어 등 문화적 폭력의 토대 위에서 정당화되고 실행된다.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의 가시성과 영향력은 반비례한다. 다시 말해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의 순서로 가시성이 높지만 영향력은 그 반대다. 문화적 폭력은 가시성은 떨어지지만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사상적 토대가 됨으로써 폭력적 사회 구조 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구조적 폭력은 문화적 폭력의 합리화 위에서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구조적 폭력은 직접적 폭력보다 가시성은 낮지만 직접적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와 제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더 크다. 전쟁 또는 범죄 등의 직접적 폭력은 가시성이 가장 뛰어나지만 그것들에 철학적,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은 문화적 폭력이고,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구조와 제도를 제공하는 것은 구조적 폭력이다. 그러므로 구조적, 문화적 폭력보다 영향력이 낮다. 그러나 가시성과 영향력은 폭력 대응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평화의 성취를 위해서는 모든 폭력에 동등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평화와 폭력을 논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전쟁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을 의미하는 직접적 폭력, 그리고 그것의 부재를 의미하는 소극적 평화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고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폭력을 다룰 수 없으며 그들의 생존과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적극적 평화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일상의 폭력과 평화를 다룰 수 없음을 의미한다. 더 원칙적이게는 직접적 폭력과 소극적 평화에만 집중할 경우 직접적 폭력의 근본원인인 구조의 문제, 그리고 구조를 정당화시키는 문화를 다룰 수 없으며 그 결과 계속 폭력의 구조 안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적극적 평화와 구조적, 문화적 폭력까지 평화와 폭력의 확대가 불가피한 이유다.
2. 평화의 핵심 요소
이 글의 초입에서 제기했던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찾기 위해 평화의 핵심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핵심 요소에 대한 견해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여기서 제시하는 핵심 요소를 배제해도 좋다고 동의할 평화 연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평화의 내용과 질을 규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이다. 이 세 가지는 평화가 가치지향적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평화 연구 또는 평화에 대한 논의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또한 일상적 삶과 생존의 문제가 평화 연구 또는 평화 논의의 가장 중요한 현안임을 강조한다.
첫 번째 요소인 평화의 관계성은 평화의 본질과 통하는 것이다. 폭력도 마찬가지지만 평화도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관계의 질에 따라 평화의 질이 규정된다. 그러므로 관계는 폭력 또는 평화를 논할 근거가 된다. 관계에는 개인 사이의 관계, 개인과 사회 구조 및 제도와의 관계, 집단 사이의 관계, 사회 사이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관계 사이에 어떤 폭력적 내용도 포함되지 않을 때 평화가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소극적 평화의 경우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므로 서로 생존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없을 때 평화적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적극적 평화는 억압적 구조는 물론 억압적 사회 구조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철학적,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없는 상태, 즉 관계 안에 어떤 폭력적 요소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모든 개인, 집단, 사회가 어떤 폭력에 의해서도 희생되지 않으며 각 주체 사이에 수평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 가능하다.
폭력을 야기하는 관계는 곧 힘의 관계를 말한다. 폭력적 상황에서 힘은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억압적 수단이 된다. 앞서 언급한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에 적용시켜 본다면 우월한 무력 또는 신체적 힘, 지배적인 구조와 제도, 주류적 사상과 예술 등이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평범한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우월한 교육, 수입, 건강, 인맥, 정보 등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
평화의 관계성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요소인 평화의 공동체성으로 이어진다. 소극적 평화든 적극적 평화든 평화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로운 공동체다. 이것은 평화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평화는 궁극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독립적인 주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 내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공동체성은 관계성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강화된다. 관계가 전제되지 않은, 다시 말해 독립적 주체들은 존재하지만 그들 사이의 평화적 관계가 부재한 형식적 공동체성은 의미가 없다. 구조적, 문화적 폭력에 의해 왜곡된 공동체성이 강제로 부과되고 그로 인해 공동체 내에서 폭력적 관계들이 형성되고 유지된다면 결국 평화의 공동체성 실현은 불가능해 진다.
평화의 지속성(sustainability)은 평화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의 전환을 통한 총체적 사회 변화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특별히 평화의 지속성은 평화의 성취를 위해 어떤 과정과 방법을 선택할 것이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평화 연구는 평화의 지속성을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평화 성취를 위한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일부 사회 구성원, 특별히 폭력 가해자의 배제가 폭력의 재발을 가져올 수 있고, 결과적으로 평화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들며,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 구성원의 평화로운 삶을 해친다는 현실적 도전을 고려한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폭력의 가해자까지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의 평화 자원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희생자 필요의 외면과 과거로의 회귀라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이런 접근은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하는 문제해결 및 화해 과정의 정교한 계획과 실행에 의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폭력의 중단 및 희생자의 필요에 답하는 단기적 노력, 그리고 진실의 규명 및 화해의 과정,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 형성, 참여 구조의 수립 등 중.장기적 노력이 결합된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평화로운 관계, 그에 기초한 평화로운 공동체, 그리고 평화의 지속성에 대한 구성원들 사이의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평화의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은 평화의 성취를 논할 때는 물론 폭력을 논할 때도 고려돼야 하는 것들이다. 인간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은 개별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호 작용 또는 연속성에 의해 관계의 단절과 공동체의 파괴를 야기하고 그 결과 안전한 삶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연쇄적 상황을 만든다. 그러므로 폭력은 단편적인 접근이 아니라 폭력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고 폭력의 연속성에 의해 어떻게 관계와 공동체가 파괴되고 안전한 삶의 지속이 방해받는지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폭력을 평화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도 분석돼야 한다.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폭력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로 연구될 때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정당성은 폭력을 평화로 전환시키는 과정의 단계적, 궁극적 목표가 평화의 요소와 모순되지 않을 때 보장될 수 있다. 결국 폭력의 평화로의 전환은 평화의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의 회복이다.
제2장 일상의 폭력
1. 폭력의 영역
일상의 폭력은 인간의 삶에 상시로 영향을 미치는 폭력을 말한다. 폭력 중 이 범주에 속하는 폭력만 별도로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 무의미하다. 인간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폭력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향의 범위가 사회 전체인지 특정 영역인지,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 또는 미미한지 중대한지 등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구별과 상관없이 영향에 노출되는 누군가에게 그것은 일상의 폭력이다.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폭력 문제는 그들 부모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낮은 임금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결국 가정은 독립된 영역이 아니며 가정의 문제는 광범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심화되는 빈부 격차와 일자리 불안 문제에 사회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폭력적 사회 구조가 가정불화의 근본원인임을 말해준다.
앞서 언급한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은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고 영향의 범위도 일반적이어서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정치, 경제, 사회 구조와 발전 정도에 따라 각각의 폭력이 차지하는 비율,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방식, 그리고 폭력에 대한 사회 및 사회 구성원들의 대응은 달라진다. 직접적 폭력은 정치, 경제, 사회 구조의 발전 속도가 느리고 안정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직접적 폭력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고 직접적 폭력이 일상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폭력이 된다. 이것은 물론 그런 사회에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구조가 안정된 사회에서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교묘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구조적, 문화적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되지만 직접적 폭력에 국한된 이해를 가진 구성원들은 자신이 일상적 폭력에 노출됐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안정된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규명하고 폭력의 제거를 주장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사회 구조 및 그것을 관리 운영하는 주체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와 정당성 주장에 도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도전을 사회 정체성의 부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적 정치, 경제, 사회 구조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과 그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제도와 기관의 힘을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의 폭력에 대한 효율적 논의를 위해 폭력의 영역을 공동체(community), 시장(market), 민족 및 국가(peoples and nations), 그리고 녹색 평화라는 이 글의 주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지구(earth), 다시 말해 지구 환경이라는 네 개의 영역으로 구분해보자. 이 구분은 일상적 폭력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공동체는 인간 생활이 이뤄지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집단을 말한다. 개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마을, 종교 및 민족 집단, 직장, 취미 집단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시장은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모든 영역을 말하며 동네 가게에서부터 세계 시장까지 모든 경제 활동 영역을 포함한다. 민족 및 국가는 민족들과 국가들 사이의 관계 및 상호 작용과 그 영향을 받는 영역을 의미한다. 지구는 모든 인간과 생물의 생활환경을 포괄하는 지구 환경과 그것의 영향을 받는 영역을 말한다.
각 영역에서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발생하며 한 영역의 폭력이 다른 영역의 폭력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이것은 곧 한 영역에서의 폭력 제거가 다른 영역에서의 폭력 제거에 영향을 주며 결국 한 영역의 평화가 다른 영역의 평화에도 영향을 주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일상의 폭력은 포괄적인 접근 방식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한 가지 또는 한두 가지 영역의 폭력만 다루는 부분적인 접근을 취한다면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영향에 계속 노출될 것이고 결국 평화의 성취는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억압, 소외, 불평등한 관계는 시장에서의 임금 차별과 빈부 격차라는 구조적 폭력의 영향을 받는다. 민족 집단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긴장은 시장의 무기 산업과 소형 무기 확산에 의해 무력 충돌로 폭발되며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직접적 폭력을 야기한다. 지구 환경 파괴로 인한 자연 재해의 증가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해체를 야기하며 그로 인한 식량 생산량의 저하는 시장에서의 식품 투기라는 구조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다시 식품값 상승을 야기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국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시장의 안정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경제활동과 삶을 위협한다. 선진산업국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의 폭력적 구조는 저개발국들을 원자재 공급처로 전락시키고 결과적으로 빈곤을 고착시켜 저개발국 공동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폭력의 이런 유기적 결합 때문에 일상적 폭력을 다루기 위해서는 개인 및 집단의 경험을 사회, 국가, 세계의 구조 및 환경과 연결시키는 분석력과, 반대로 사회, 국가, 세계의 정책 결정과 제도 수립이 개인 및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2. 폭력의 희생자들
네 가지 영역의 폭력은 인간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 및 집단이 사는 공간에 따라,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폭력에 미치는 영향과 폭력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달라진다. 특별히 폭력 논의에 있어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상대적으로 폭력의 영향에 많이 노출되고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는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폭력의 희생자를 규명하고 희생의 내용 및 정도를 분석하는 것은 폭력 제거의 방식과 평화 성취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폭력 논의는 희생자에 초점이 맞춰질 때 평화의 전제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폭력의 희생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 즉 약자다. 여기서 언급돼야 하는 것은 그러므로 힘의 관계며, 왜곡되고 억압적인 힘의 관계가 폭력을 야기하고 폭력의 희생자를 만든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힘의 원천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직접적 폭력은 물리적 힘의 노골적인 사용에 의해 발생하지만 구조적, 문화적 폭력은 다양한 힘의 전략적 이용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절대적 약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힘의 전략적 이용에 따라 힘의 관계가 변할 수도 약자가 폭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동체 영역에서 드러나는 가장 가시적인 폭력의 희생자들은 신체적, 물리적 힘이 부족한 약자들로 이들은 직접적 폭력의 피해를 입곤 한다. 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구조적, 문화적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열등하게 평가되는 계급, 지위, 교육 수준, 수입, 정보, 인맥 때문에 사회는 물론 공동체 내에서도 변방에 몰리고,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되며, 쉽게 폭력에 희생된다. 또한 이들은 철학, 사상, 종교, 예술 등의 분야에서 공동체 내 담론을 형성하지도 주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차별, 편견, 왜곡 등을 야기하는 문화적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폭력적 요소가 존재하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희생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폭력 희생자에 대한 지원이나 폭력을 규명할 구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이 표출된 상황에서 공동체는 전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폭력 희생자에 대한 비난이나 희생자의 퇴출을 택하는 경우가 생긴다.
시장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희생자들은 경제적 약자들,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든 폭력의 대상이 된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직접적 폭력은 강제 노동, 노예 노동, 노동자 폭행 등이고, 구조적 폭력은 경제적 강자의 이익에 맞춰진 경제 구조와 정책, 그리고 그것들을 운영하는 사회, 국가, 세계의 경제 기관들이다. 문화적 폭력은 시장의 자율성을 예찬하고 국가의 개입을 차단하는 자유시장 경제이론, 빈곤을 신의 축복과 선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는 종교적 가르침,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담론 등이다. 경제적 약자들은 이 모든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경제적 약소국인 저개발국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폭력에 희생된다. 선진산업국들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 구조 하에서 저개발국들은 자국 시장을 보호할 구조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시장 개방의 압력을 받고 결국 자유시장 경제 정책의 강화에 맞춰 시장을 개편한다. 그에 따라 다수의 빈곤층은 경제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폭력적인 시장 구조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결국 저개발국의 빈곤층은 약자 중의 약자로서 세계 시장의 폭력적 구조와 자국 시장의 폭력적 구조 모두에 의해 희생된다.
민족 및 국가 사이 폭력의 희생자들 역시 약소국 국민들과 약소민족에 속한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세계 강대국들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구호에 동원돼 지속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물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에 희생돼 왔다. 북미와 서유럽의 유색 인종 및 이민자들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집단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정치, 경제, 사회 구조의 폭력적 변화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 이민자 혐오, 종교 근본주의 등의 문화적 폭력은 유색 인종 및 이민자들의 자존감을 해치고, 사회의 각종 차별 정책 및 소외 구조를 정당화하며, 때로 폭행과 살인까지 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영향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점진적 파괴와 그로 인해 발생한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희생자들 역시 약자들이다. 이들은 특별히 경제적 약자들로 지구 환경의 변화가 가져오는 재해에 가장 크게 노출되고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이들에게는 자연 재해는 물론 그것에 동반하는 기근과 질병 등에 의한 생명의 손실과 신체적 손상이라는 직접적 폭력이 가해진다. 또한 국가 및 세계 차원의 기후변화적응(climate change adaptation) 정책의 수립 및 집행 논의에 대한 참여가 제한되고, 그 결과 정책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는 구조적 폭력도 가해진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이들 약자의 카테고리에 많은 저개발국 및 빈곤국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아주 미미하거나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피해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폭력 희생자의 언급과 그들이 입는 피해의 분석은 일상의 폭력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절차다. 희생자의 언급과 내용의 분석 없이는 폭력이 삶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적 주장으로 오도되기 쉽기 때문이다. 특별히 일상의 폭력이라는 용어가 갖는 현실적 무게감을 고려한다면 희생자와 희생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아주 타당한 절차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 이해의 궁극적 목표는 전쟁의 부재는 물론 폭력적 사회 구조의 변화와 문화적 폭력의 극복을 통한 적극적 평화의 성취기 때문에 변화와 극복의 대상이 되는 폭력을 상세히 언급할 수밖에 없다. 다만 폭력 희생자를 언급함에 있어 ‘희생자’와 ‘가해자’의 고착된 구분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사회적 약자인 개인 또는 집단이지만 그들 또한 타인 또는 타집단과의 힘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사회 구조와 문화적 수단을 폭력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폭력이 관계 속에서 발생하며 폭력을 야기하는 힘의 관계에 있어서 절대적 약자는 없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다시 폭력 내용의 상세 분석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제3장 녹색+평화, 그리고 정의로운 녹색 평화
1. 평화와 녹색의 결합
‘녹색 평화’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녹색에 평화를 결합시킬 것이냐, 아니면 평화에 녹색을 결합시킬 것이냐는 평화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신중히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녹색에 평화를 병렬적으로 결합시킨다면 녹색이 핵심 주제가 되고 평화는 녹색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녹색을 건강한 지구 환경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의 건강한 삶을 상징하는 언어로 상정한다면 녹색에 평화를 결합시킨 논의는 결국 지구 환경의 파괴와 그에 따른 생태계의 위기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지구 생태계가 직면한 현안이 주요 연구 주제가 아닌 필자의 입장에서는 논의할 내용을 찾기 힘들다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더 원칙적이게는, 그리고 진지하게는 평화가 보충적 위치에 서게 되는 논의에 굳이 참여할 타당성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녹색 평화에 대한 논의의 시작에 앞서 스스로 입장 정리를 할 필요가 제기됐고 그 결과 녹색 평화에 대해 논하되 녹색을 평화를 수식하는 언어로 상정해 논의를 전개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녹색 평화 (green peace)’가 아닌 ‘녹색의(green) 평화(peace)'를 논의한다는 얘기다. 이것은 녹색과 관련된 폭력과 평화의 현안을 다룸을 의미하며, 더 세밀하게는 녹색과 관련해 인간에게 가해지는 일상적 폭력의 내용과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할 방안을 다룸을 의미한다. 녹색 평화에 대한 논의가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기보다는 초기 단계에 가깝고 평화 연구에 녹색을 결합시킨 논의도 풍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접근이 결과적으로 녹색에 평화를 병렬적으로 결합시킨 논의와 비슷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에 녹색을 결합시킨 논의는 지구 환경의 파괴로 야기된 폭력의 내용과 희생자를 평화 연구의 관점에서 규명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평화에 특정 언어인 녹색을 결합시킨 녹색 평화의 논의는 내용에 있어서 다른 일반적인 평화 논의와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첫째로 일상에서 직면하는 폭력 중 어떤 폭력과 폭력의 희생자에 주목해야 하고 어떤 폭력적 구조를 언급해야 하는지에 있어서의 차별성을 의미한다. 둘째로 앞서 언급한 평화의 핵심 요소인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이 녹색이라는 특정 언어에 맞게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며 평화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지에 있어서의 차별성을 의미한다.
첫 번째 차별성의 핵심 주제는 자연 환경 변화가 야기한 폭력적 상황과 그로 인한 희생자다. 이것은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 그로 인한 빈번한 자연 재해와 피해자의 발생이라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각각의 상황을 야기하고 지속시키는 부당한 구조의 언급을 말한다. 폭력적 상황은 자연 재해가 가져온 피해 자체가 아닌 자연 재해로 인해 저개발국 및 빈곤국의 빈곤층이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현실을 말한다. 지구온난화가 야기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의 증가 및 강도의 심화가 급속한 산업화와 과도한 개발에 기인한다는 과학적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선진산업국들이 결과에 책임을 지지도 상황 개선에 매진하지도 않는 부당한 상황을 말한다. 더 근본적이게는 산업화와 개발로부터 소외됐던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부당한 구조가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녹색 평화의 논의는 ‘녹색’에 도전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지속시키는 부당한 구조와 그로 인해 발생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희생자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차별성인 녹색에 평화의 핵심 요소인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을 결합시킨 해석은 범위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녹색이 상정하는 것이 지구 환경과 그 안에 존재하는 생물체들의 건강한 삶이므로 지구촌 전체의 범위 안에서 평화 요소를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에 근거한 관계성은 지구 환경 파괴에 대한 기여 수준에서 상반된 위치에 있는 선진산업국과 저개발국 및 빈곤국, 과소비자와 저소비자, 정책결정자와 일반 시민 등의 관계가 폭력적이지 않음을 말한다. 나아가 수평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공동체성은 관계성의 토대 위에서 평화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공동체, 다시 말해 평화로운 지구촌이라는 공동체의 형성을 말한다. 이것은 지구 환경 파괴에 기여한 수준에 따라 상황 악화의 억제와 개선에 기여할 의무를 부과하고 희생자의 구체적 필요에 답하는 지구촌 공동체를 말한다. 지속성은 폭력적 관계의 중단을 통한 상호의존적 관계의 형성과 지구촌 공동체 의식의 공유가 선결될 때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 환경 파괴 상황의 공유, 폭력적 구조와 희생의 인정, 책임의 규명과 공유, 평화로운 지구촌 공동체 수립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2. 도전적 상황
앞서의 논의에 근거해 녹색 평화는 지구 환경의 변화로 발생한 폭력적 상황을 제거하고 그로 인한 희생을 중단시킴으로써 다양한 주체들 사이에 평화적 공존이 이뤄지는 평화를 말한다. 지구 환경의 변화는 인간 활동의 부정적 영향으로 인한 변화를 의미하며 그로 인한 폭력은 인간이 미친 영향이 지구 환경을 교란 또는 파괴시키고 그 영향이 인간에게 폭력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폭력적 상황에는 변화 자체는 물론 변화에 대한 인간의 대응 방식에 의해 야기된 상황도 포함된다.
지구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 발생하는 가장 두드러진 직접적 폭력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는 자연 재해지만 그로 인한 질병의 증가와 기근의 확산 및 아사 등도 직접적 폭력으로 언급되어져야 한다. 구조적 폭력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야기한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 대량 온실가스 배출국의 감축 노력 실패, 자연 재해 피해 축소 노력 부족 등 세계적, 국가적,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작동하지 않는 정책과 제도 등이다. 문화적 폭력으로는 무차별적 자연 개발을 독려하고 정당화하는 개발 이론과 그것을 합리화하는 과학 이론, 소비 중심의 경제 발전을 독려하는 자유시장 경제 이론과 경제 성장 담론,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하는 종교적 가르침과 사회 담론이 있다. 녹색 평화에 도전하는 폭력의 다면성은 폭력에 대한 대응 또한 다면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녹색 평화에 도전하는 폭력은 지구 환경이라는 주제의 포괄성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폭력의 모든 영역에서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자연 재해로 공동체는 해체되고 역사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관계는 단절된다. 공동체의 해체로 야기된 인구 이동은 빈곤 인구 증가, 노동착취, 지하경제의 확산, 빈곤 인구를 배제한 성장 중심 경제 정책 등 시장에서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기후 변화의 압박으로 종교적, 민족적 배경이 다른 집단 사이의 갈등이 발생 또는 심화되고 무력 충돌의 위험도 높아진다.
희생의 측면에서도 복잡성과 다면성은 그대로 드러낸다. 지구 환경의 변화라는 큰 범위의 현안이 폭력의 원인이 되고 직접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모든 인간의 일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는 빈도와 강도는 경제적 수준과 사는 사회와 국가에 따라 다르다. 모순적이게도 지구 환경 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저개발국 및 빈곤국,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게 소비하는 경제적 약자가 가장 자주 심하게 폭력에 노출되는 부당한 결과가 나타난다. 나아가 간접적 영향에 의한 희생은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어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희생자들도 담론에서 소외되는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방글라데시 저지대 주민들은 홍수 피해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지고 북극의 이누이트 부족은 얇아진 얼음층 때문에 사냥에 제한을 받는다. 파푸아뉴기니의 고지대 주민들은 기후와 강수량의 변화, 그로 인해 늘어난 모기 때문에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투발루, 키리바시 같은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를 포기해야 상황에 직면했다. 반면 선진산업국들은 같은 상황에 노출돼도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피해를 입는다. 방글라데시와 호주 모두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겐 그것이 생존 현안이 되고 호주 사람들에겐 적응 문제가 된다. 호주는 방글라데시보다 월등히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기후 변화의 영향을 극복할 부를 축적하고 있고 방글라데시는 호주보다 월등히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생존 문제조차 해결할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구온난화 및 기후 변화의 책임과 그 영향에 대한 노출이라는 상관관계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후변화의 간접적 피해는 다방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빈곤, 식량난, 주택난 등은 물론이고 사회 해체, 이민, 난민, 범죄 등의 문제를 야기하면서 해당 사회와 국가는 물론 전 세계에 압력이 되고 있다. 특별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사회와 국가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문제들이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면서 ‘파멸적 수렴(catastrophic convergence)’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그러므로 녹색 평화에 도전하는 폭력을 논의함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이론이다. 파멸적 수렴은 여러 재앙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의 재앙이 다른 재앙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서로 얽히면서 재앙이 증폭되는 상황을 말한다. 한 가지 예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의 증가는 빈곤을 심화시키고, 그로 인해 난민과 이민자가 증가하게 되며, 난민과 이민자 유입에 의한 압력으로 국가 및 집단 사이의 갈등은 무장 갈등으로 촉발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런 파멸적 수렴은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와 피해에 대한 사회 및 국가의 대응 부재, 또는 폭력적 대응이 예상치 못한 생존의 문제를 야기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녹색 평화를 해치는 심각한 도전이 된다.
기후 변화가 갈등 유발에 미치는 영향의 수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까닭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후 변화가 기존의 많은 문제들과 얽히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인간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갈등 촉발의 위험성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런 갈등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한 사회 또는 국가 내 집단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이다. 특별히 많은 빈곤 국가와 사회가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와 무장 갈등이라는 이중 문제에 노출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주변 사회 및 국가의 대응과 관련된 갈등이다. 특별히 기후 난민의 유입은 이들을 수용하는 주변 사회 및 국가의 자원 이용을 압박하고 폭력적 대응의 가능성을 높인다.
극심한 가뭄과 홍수를 반복하는 케냐의 기후 변화로 케냐 북부는 사막화됐고 이런 변화는 유목 부족들 사이의 가축 약탈, 무력 충돌, 인명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였던 부족 집단들은 인간의 생존과 가축 방목을 위해 우물과 목초지를 둘러싸고 서로를 죽이는 무력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브라질 북동부 지역의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농업 환경의 악화는 농촌 사람들을 대도시로 이주시켜 빈민가의 확대를 야기했다. 이는 무기와 마약에 관련된 범죄와 지하경제의 확산을 야기하고 다시 정부의 범죄 전쟁과 그로 인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멕시코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기후 변화와 연계된 엘니뇨와 적조 현상, 그리고 이상 기후와 가뭄은 어민들과 농민들을 고향에서 내몰았다. 이들은 도시에 유입돼 빈곤, 실직, 빈민가 생활을 경험하고 생존 문제 때문에 쉽게 범죄에 빠져든다. 이런 모든 일은 경제적, 정치적 불안 및 부패한 정부에 더 직접적 원인이 있지만 기후 변화가 이 모든 문제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변덕스런 날씨와 가뭄과 홍수의 반복은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에게도 치명적이다. 가뭄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은 밀에 비해 6분의 1의 물만 필요로 하는 아편 재배를 중단하기 힘들다. 아편 재배는 탈레반을 포함한 반군에 전쟁 비용을 대고 미군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과의 치열한 전투와 인명피해의 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 어업, 목축업의 실패와 빈곤의 확산은 기후 난민의 발생을 부채질한다. 2009년, 2010년, 2011년 소말리아의 연이은 가뭄은 내전의 영향과 함께 난민을 급증시켜 케냐, 에티오피아, 예멘 등의 주변국에 영향을 줬다. 난민을 포함한 대규모 이주민의 유입은 수용국 입장에서 사회적 압력, 경제적 부담, 정치적 위협,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 등의 문제로 해석되곤 한다. 때문에 많은 산업선진국들은 이주민들의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특성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기후 난민의 유입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에 대한 폭력적 대응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생계 수단을 잃은 멕시코 어부와 농부 중 상당한 수는 미국행을 택하고 미국 정부는 마약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국경 지역에서 무력에 의존한 불법 이민자 색출과 추방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EU 국가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오는 불법 이민자를 색출하기 위해 해상 감시를 강화하고 군대의 개입은 물론 난민 발생 국가에 대한 군용기 감시까지 천명하고 있다. 한때 사회 또는 노동 문제로 해석됐던 이주 문제는 이제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안전 문제, 특히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선진산업국들의 선택은 무력을 이용해 기후 난민의 유입을 막고 발생 지역 내에 난민을 가둬놓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런 정책은 기후 변화의 영향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고 극심한 기후 변화로 생계를 위협받는 빈곤국들 스스로 모든 문제를 감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3. 정의로운 녹색 평화와 포괄적 구상
평화의 전제가 되는 것은 폭력의 부재다. 그러므로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폭력적 요소를 규명하고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앞서 언급한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 중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에 따라 폭력에 대한 접근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평화 성취의 영향을 누구의 입장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수혜자를 누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폭력을 다루는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 소극적 평화의 달성을 목표로 삼아 전쟁 및 물리적 폭력의 중단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회 구성원들이 누려야 할 실질적 혜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폭력의 중단은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 충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적극적 평화의 성취를 목표로 삼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구조를 종합적으로 바꾸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가 배제되고 현실적 필요가 언급되지 않는다면 그 역시 거시적 변화의 수준에만 머물고 미시적 변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구조적 불완전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사회 구성원이 입는 혜택에 대한 고려가 배제된 평화 노력은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장 갈등 후 피스빌딩(peacebuilding) 과정에서 평화 노력은 하향식(top-down)의 무력에 기댄 국가 및 사회 건설 또는 재건에 맞춰지고, 사회 구조는 지역 주민들의 필요가 아닌 재정적,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는 외부 개입자의 요구에 맞춰 수립되며, 경제 제도는 해당 지역의 수준과 삶의 필요가 아닌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필요에 맞춘 자유시장 원칙에 따라 재단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는 배제되고, 기대는 묵살되며, 필요는 외면당한다. 평화 성취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오류와 힘의 지배에 기댄 과정은 평화가 ‘누구의 평화가 되어야 하느냐'의 문제 제기를 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는 일상적 폭력의 제거와 평화의 성취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 일상적 평화의 성취를 위해 거시적 차원에서의 사회 구조와 변화와 정책적 결정이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미시적 차원에서 동시에 효과를 발휘해야 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구조 및 정책의 결정과 실행에 있어서 필요의 파악과 참여의 보장 또한 불가피하다.
위에서 언급한 ‘누구의 평화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은 흔히 ‘누구의 정의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언급된다. 이것은 평화 성취의 과정과 목표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특히 희생자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정의를 담보해야 하며, 그런 토대 위에서만 평화 성취가 가능함을 말해준다. 이것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면 ‘정의로운 평화’가 된다. 다시 말해 정의가 없는 평화는 의미가 없으며 평화는 정의로울 때 비로소 평화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현실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구의 평화인가?’를 ‘누구의 녹색인가?’라는 질문으로, 그리고 ‘정의로운 평화’를 ‘정의로운 녹색’으로 대체한다면 녹색 평화를 논의함에 있어 어떤 점을 경계하고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이미 담론이 형성돼가고 있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와도 통하는 질문이다. 지구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기후 변화는 모든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과 적응에서는 차별적 구조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이런 차별적 구조는 지구 환경 변화에 대한 책임과 희생의 관계에서 반비례적 상황을 보여준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 사회, 개인은 가장 적은 피해를 입고, 가장 적은 또는 전혀 책임이 없는 국가, 사회, 개인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논의는 선진산업국 대 저개발국 or 빈곤국, 부자 대 빈자, 기업 대 개인, 정치, 경제, 사회 분야 엘리트 대 소시민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 적용돼 논의될 수 있다.
‘누구를 위한 녹색인가?’라를 질문에 답을 제공하는 ‘정의로운 녹색’에 대한 논의는 곧 녹색 평화를 성취하기 위한 방향과 과정에 대한 논의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녹색에 대한 논의는 먼저 지구 환경의 변화를 야기한 책임의 규명, 그리고 그로 인한 지구온난화 및 기후 변화가 야기한 피해와 희생자의 규명을 다뤄야 한다. 정의를 상정하지 않고 ‘녹색’에만 초점을 맞춘 논의는 자칫 책임 회피를 위한 담론으로 악용되거나, 경제 성장의 신 주제로 오용되거나, 지구 환경 보호와 자연친화적 삶의 추구라는 낭만적인 주제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 지구 환경 변화와 관련된 인류 생존의 긴박한 문제가 다뤄져야 하고, 문제 해결 논의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지구 환경 교란 또는 파괴의 책임이 언급돼야 하며, 그로 인한 도전적 상황과 희생자의 삶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인정돼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문제 해결의 방향과 과정에 대한 사회, 국가, 세계 차원에서의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녹색 평화 성취를 위한 방향과 과정을 논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 점이 고려돼야 한다. 첫째는 포괄적인 접근이다. 지구 환경 변화는 당장의 피해를 가져오는 동시에 먼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므로 단기적 대응은 물론 중,장기적 계획까지 포함하는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는 평화적인 과정이다. 정의로운 녹색에 근거한 녹색 평화가 되기 위해서는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희생자만을 염두에 둔 과정을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지구 환경의 변화가 모든 인간의 생활 및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문제의 규명과 해결의 모색을 위해 전 세계 시민들의 인식 공유와 참여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특정 당사자 또는 당사자 집단을 배제한 논의는 과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림은 물론 문제 해결의 합의와 실행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이게는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이라는 평화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적 피스빌딩과 전략적 피스빌딩이라는 두 가지 구조는 녹색 평화 성취를 위한 포괄적, 평화적 접근의 구상에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통합적 피스빌딩은 문제에 대한 대응 수준을 수직선으로, 행동 시간대를 수평선으로 설정한 구조를 말한다. 수직선의 대응 수준은 문제를 일으킨 현안, 그것에 영향을 미친 당사자들의 관계, 그리고 다시 그것에 영향을 미친 하부 구조와 광범한 구조라는 네 개의 층을 포함한다. 수평선의 행동 시간대는 2-6개월의 즉각적인 위기 대응, 위기 대응 준비 및 훈련을 포함한 1-2년의 단기 계획, 사회 변화를 위한 5-10년의 구상,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 비전을 포함하는 20년 이상의 장기 구상을 포함한다.
기본적으로 현안은 즉각적인 위기 대응과, 관계는 단기 계획과, 하부 구조는 5-10년의 사회 변화 구상과, 그리고 광범한 구조는 20년 이상의 장기 구상과 대응점에 있다. 그러나 현안의 완전한 해결은 대응점에 있는 즉각적인 위기 대응과 함께 하부 구조와 광범한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한 중,장기 구상을 필요로 한다. 위기 대응을 위한 훈련과 준비를 통해 개선된 관계는 바람직한 미래 비전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문제의 근본원인이 자리 잡고 있는 하부 구조 및 광범한 사회 구조는 중,장기적 대응을 필요로 하지만 단기적 대응과 모순돼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단기적 대응은 하부 구조 및 광범한 구조의 문제를 반영해야 하며 중,장기적 사회 변화의 구상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통합적 피스빌딩을 녹색 평화에 적용해 수직선에 해당하는 대응 수준을 살펴보면, 현안의 해결은 급격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자연 재해, 갈등의 발생 및 심화, 파멸적 수렴 현상에 대한 실질적 대응을 포함해야 한다. 관계의 수준에서는 선진산업국과 저개발국 및 빈곤국, 부자 대 빈자, 과소비자 대 저소비자, 기업 대 개인, 사회 엘리트 대 소시민 사이의 힘에 의존하는 폭력적 관계와 상호 작용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하부 구조에서는 폭력적 관계와 그로 인한 문제의 발생을 개인화, 개별화시켜 외면하고 방치하는 공동체, 단체, 기업, 지방 정부, 저개발국 및 빈곤국 내의 대응 문화, 소비 방식, 소통 방식 등이 개선돼야 한다. 이 하부 구조에서 나타나는 대응 방식의 문제점은 광범한 사회 구조의 정책 부재와 법과 제도의 부족에 의해 정당화되므로 반드시 광범한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 근본원인을 제공하는 광범한 구조에서는 부실한 온실가스 의무 감축 제도, 저개발국 및 빈곤국에 대한 기후 적응 지원 부족, 갈등 및 파멸적 수렴 현상에 대한 무력 대응 정책 등이 다뤄져야 한다.
수평선에 해당하는 행동 시간대를 살펴보면 먼저 자연 재해와 그와 관련된 갈등 현안에 대한 즉각적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현안을 분석하고, 위기에 처한 개인과 집단의 필요를 파악하며, 그에 대한 효율적 대응을 준비하고 인력을 훈련하는 1-2년의 단기 계획이 필요하다. 이런 단기 대응과 계획은 문제 해결 방향 논의 및 합의, 공동 대응 체계 수립, 대응 문화 및 소통 방식의 개선 등 5-10년 동안의 사회 변화 구상을 담아야 한다. 여기에 사회, 국가, 지역, 세계 차원에서 다층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후 변화 적응 기회와 지원이 제공되며,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협력 관계에 기초해 녹색 평화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는 20년 이상의 장기 구상이 더해져야 한다. 이런 행동 시간대는 수직선에 위치해 있는 관계의 형성 및 강화, 하부 구조 및 광범한 구조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과 상호 작용을 염두에 두고 구상돼야 한다.
전략적 피스빌딩은 폭력의 예방, 감소, 나아가 평화로의 전환을 위해 가족, 공동체, 조직, 기업, 정부 등 모든 사회 주체 내부의 개인 및 집단의 관계는 물론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과 강화를 말한다. 이렇게 형성되고 강화된 관계를 통해 각 주체 및 그들 내부의 개인 및 집단이 가진 자원이 공유되고 행위자들의 역량과 다양한 접근들이 연결되고 통합된다. 서로 공유되고 통합된 다양한 자원, 역량, 접근은 실질적으로 피스빌딩에 기여하게 된다. 이런 전략적 접근을 통해서만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발생하는 복잡한 현안들에 대응하고 다수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계의 형성과 강화는 사회 및 국가 내는 물론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관계의 형성과 강화도 포함해야 한다.
전략적 피스빌딩은 녹색 평화의 성취를 위한 불가피한 접근이다. 지구 환경 변화의 영향이 전 세계에 미칠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들과 복잡한 양상으로 얽히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 주체들의 관계 형성과 네트워킹을 통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다양한 접근, 자원, 역량의 연결과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전략적 연결과 통합은 녹색 평화에 도전이 되는 급격한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의 급증, 폭력적 상황의 확산과 폭력적 구조의 강화, 세계 차원의 기후 변화 적응 대책의 미비와 희생자의 외면 등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 변화를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세계 차원에서 해결 방향과 방식에 합의하는 것과 동시에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와 파멸적 수렴 상황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국가들과 희생자들의 삶의 필요를 충족시킬 구조도 필요하다. 이것은 세계 또는 국가 차원의 정책이 피해 당사자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지역적, 문화적 적합성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구호와 구조 활동 같은 자연 재해에 대한 즉각 대응 체계는 물론 사회적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대체 농작물 재배, 자연 재해 후 실직자 구제, 지역 주민의 위기 분석과 대응책 모색, 산림화 작업, 재해 내구성 주택 건설 등의 중, 장기적 대응도 필요하다. 이런 포괄적 대응은 당사자 개인 및 집단의 노력은 물론 국가 및 국제사회의 지원이 병행될 때만 효과를 담보할 수준의 실행이 가능하다. 전략적 피스빌딩은 이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을 지역 및 세계와 연결시키고 개인 및 집단의 노력을 국가 및 세계의 구조 및 정책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통합적 피스빌딩과 전략적 피스빌딩은 녹색 평화의 질을 규정짓는 정의로운 녹색의 성취와 녹색 평화가 포함해야 하는 관계성, 공동체성, 그리고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접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녹색 평화 성취를 위한 노력이 일상적 폭력의 평화적 전환은 물론 평화의 지속성을 위한 광범한 구조의 변화까지 목표로 삼아야 하고, 자연 재해에 직접 노출된 희생자는 물론 간접적이고 점진적으로 피해에 노출되는 모든 인간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통합적 피스빌딩과 전략적 피스빌딩은 그런 다층적, 다면적 접근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구상이다.
끝맺는 말
녹색 평화 논의는 평화와 폭력에 대한 논의를 더욱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직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향후 양적, 질적 면에서 어느 수준까지 논의가 확대될지는 알 수 없으나 논의의 시작 자체가 갖는 의미는 간과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녹색 평화 논의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평화에 대한 논의를 직접적 폭력의 부재에 한정하거나 집중시키지 않고 지구 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해 야기된 일상적 폭력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평화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삶과 생존을 위해 충족되어야 할 필요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방면에서 지구 환경 변화 위기에 대한 대응이 미미한 상황에서 지구온난화 및 기후 변화가 가져온 폭력적 상황을 규명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문제에 대한 공동 인식과 대응을 모색하게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런 논의가 실질적으로 녹색 평화의 성취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녹색 평화 논의는 평화를 해치고 평화의 성취를 방해하는 폭력의 규정에 있어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논의의 토대가 되는 폭력의 규정은 지구 환경 변화와 그것이 인간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라는 포괄적 영역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폭력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한국사회 또는 아시아라는 지역과 세계를 분리시킬 수 없고 폭력적 상황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지역 및 국가를 개별화시킬 수도 없다. 특별히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을 넘어 가장 필요한 일이다. 그들의 삶이 지구 환경 변화에 도전이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및 기후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자연 재해와 갈등 및 파멸적 수렴 상황의 도전이라는 구체적 영향을 가장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지구 환경과 관련해 세계인들이 직면한 구체적인 도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그것을 야기한 폭력적 구조의 규명 과정은 물론 평화 성취의 과정과 목표 설정에도 선명성을 더한다. 무엇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폭력적 상황과 그 영향의 큰 파급력 때문에 폭력의 제거와 평화의 성취 과정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희생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타당성을 강조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희생을 감내하는 개인 및 집단에 대한 분석은 전 세계적 차원과 연결시켜 이뤄져야 한다. 그들이 직면한 문제가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라는 전 세계가 직면한 도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상향식(bottom-up)과 하향식(top-down)이 결합된 이런 접근은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의 상호연관성을 분석함으로써 입체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녹색 평화 논의는 무엇보다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과 폭력적 상황을 지구촌 모든 인간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불가피하고 궁극적인 목표를 상정하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전 세계가 함께 직면하고 있는 도전적 상황을 경제적 성장 저해, 정치적 불안정 야기, 사회적 비용 증가, 국제사회의 위기 등 거시적 문제에만 한정시켜 논의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접근은 담론 형성과 해결 논의에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참여를 배제시키고 더 근본적이게는 문제의 근본 원인과 희생자들을 외면함으로써 결국 문제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오히려 문제를 확대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분화시켜 지구 환경 변화로 야기된 폭력적 상황이 다양한 개인 및 집단의 삶과 생존에 미치는 영향의 내용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미시적 접근은 도전적 상황을 일상의 폭력이라는 영역 안에서 재해석할 수 있게 하고, 폭력적 상황의 극복을 통한 녹색 평화 성취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하며, 모든 인간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진 녹색 평화가 미시적 관점을 유지한 채 거시적 문제에 대한 재해석과 해결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는 타당성을 제공한다.
평화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삶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모든 폭력이 중단되고 다양한 개인 및 집단의 평화적 공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녹색 평화 논의도 이런 궁극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 그러므로 녹색 평화 논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보와 분석을 담은 연구가 되어야 하고, 책임의 외면과 희생의 집중이라는 왜곡된 현실을 정의로운 녹색에 대한 도전이자 폭력으로 해석해야 하며, 지구온난화 억제와 기후 변화 적응의 노력과 혜택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의로운 녹색 담론을 통해 사회와 국가, 나아가 세계의 구조와 그 안의 다양한 폭력적 관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녹색 평화 논의가 간과할 수 없는 주제다. 녹색 평화 논의의 궁극적인 목표 또한 지구 환경 안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개인 및 집단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2013년 5월 발행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평화인문학 총서 <녹색평화란 무엇인가>에 실린 글로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습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와 저자를 밝혀야 합니다. 각주와 참고문헌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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