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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결 연재 7 갈등, 가치의 충돌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7. 1. 09:56
가치, 배제하라?
갈등을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으로 구분해 놓은 자료들을 심심찮게 접한다. 이익갈등은 나누는 것이 가능하지만 부족해 보이는 여러가지 자원을 둘러싸고 생기는 갈등이고, 가치갈등은 나누거나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나 생각을 둘러싸고 생기는 갈등으로 설명한다. 이것을 기본적이고 중요한 갈등의 구분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런데 정말 갈등은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렇게 구분하면 갈등은 해결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우선 얘기하자면 갈등해결(conflict resoution) 연구에서는 갈등을 굳이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 구분은 협상이론을 갈등해결의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엄격히 따지면 갈등(conflict)이 아니라 다툼(dispute)를 다루는 사람들이 주로 주장한다. 갈등해결 연구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존 버튼(John Burton)은 'conflict'를 'dispute'와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는 갈등을 당사자의 정체성, 안전, 삶의 필요 등 절대 타협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둘러싸고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이것은 곧 갈등이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선과 악 등을 구분하는 당사자의 가치와 관련돼 있음을 말한다. 이것을 '세계관 갈등(worldview conflict)'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치나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가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익을 위해 가치의 포기를 요구한다면 갈등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을 이익을 둘러싼 것과 가치를 둘러싼 것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은 이익갈등은 해결이 용이하고 가치갈등은 해결이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가치갈등의 성격이 강한 갈등은 가치를 배제하고 이익의 분배에만 초점을 맞춰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갈등은 그렇게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모든 갈등은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갈등이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 사이에 우연히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겪는 갈등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가치 체계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부 갈등에도, 선.후배 갈등에도, 부부 갈등에도 마찬가지다. 집단 사이 갈등도 대부분 세상을 보는 시각과 무엇을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선택할지에 대한 가치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익 또한 그런 기준에 의해 판단되고 선택된다. 그러니 가치를 배제하고 이익만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런 접근으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힘들다. 물론 갈등은 그대로 놔두고 이익만 분배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치, 인정하라!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을 구분하는 사람들은 흔히 환경이나 개발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가치갈등으로 취급해서 해결이 어려운 갈등으로 분류한다. 반대하는 시민단체나 일부 주민들이 환경과 개발에 반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이나 기업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두 조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기업은 이익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것에 맞춰 경영 전략과 실행을 선택한다. 공공기관은 현재 통치하고 있는 정부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고 자기 조직의 가치를 더해 정책을 세우고 실행한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일하는 개인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개인의 가치는 조직의 가치를 지원 또는 승인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조직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하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들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상대할 때 항상 조직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공공기관과 기업도 분명하게 자신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고 항상 그것에 기초해 갈등에 대응한다. 사실 공공기관과 기업의 가치는 더 엄격하게 적용되고 보통 갈등의 상대인 개인이나 집단보다 힘이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되지 않는다.결국 갈등은 가치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이치다. 갈등이 사람 사이에서 생기고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의 것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라 해도 왜 그 이익을 반드시 취해야 하는지는 각 당사자의 가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 갈등을 굳이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 사이의 문제인 갈등이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가치가 내포되지 않은 갈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역할에 대한 다른 기대, 조직에서의 업무 분배, 개발과 보상의 문제, 공공정책의 실행 찬성 또는 반대 등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근저에는 서로 다른 가치가 자리잡고 있다. 다만 갈등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가 미치는 영향의 수준이 달라질 뿐이다.그렇다면 다른 가치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가치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등도 해결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해결되는 갈등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후 갈등을 야기한 문제와 해결 방식의 모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상대를 비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심지어 상대의 존재를 부인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말 어려워진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다른 말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누가 대화를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겠는가. 그러니 상대의 다른 가치를 적극 인정하는 것은 갈등의 해결을 위한 원칙적 접근 중 하나이자 중요한 전략이 된다.'평화갈등 이야기 > 갈등해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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