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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결 연재 5 기억해야 할 원칙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5. 27. 11:56
서울을 가도 제대로 가야 한다
'갈등해결'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갈등을 해결하면 그것이 곧 '갈등해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많은 방식이 있다. 그러나 '갈등해결'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다시 말해 '갈등해결'이라는 연구 및 실천 영역 안에서 갈등을 해결한다면 몇 가지 지켜야 할 기본원칙이 있다. 만일 그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갈등해결'이 될 수 없다. 갈등의 해결은 될 수 있지만 말이다. 갈등해결이 그런 원칙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래야 당사자들이 가장 만족스런 결과를 얻는 해결 과정을 기대할 수 있고, 누구도 손해보는 결과를 만들지 않을 수 있으며, 해결 과정에서 더 이상 관계가 악화되지 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행가능한 합의를 만들 수 있고 당사자들 사이는 물론 주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몇 가지 원칙을 정리해 보자.
당사자의 자발적 선택
갈등해결은 특정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바로 당사자들이 커피숍이 됐든 회의실이 됐든 마주 앉아, 또는 얼굴이 보기 싫거나 볼 자신이 없으면 옆으로 앉아 대화를 하고 해결책에 합의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당사자들이 직접 진행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제3자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다면 제3자는 어떻게 대화에 임하도록 당사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항상 그것이 문제다.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가 없는 당사자들은 대화 자리에 앉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럼 제3자가 억지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반드시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제3자나 주변 사람들이 설득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반드시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 때문에 한 당사자가 거부하면 과정은 진행될 수 없다. 당사자가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사자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또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과정 전체를 스스로 책임지고 과정에 적극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사자 합의
사람들은 주체적인 것 같지만 문제에 직면하면 은근히 다른 사람이 대신 판단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최종 결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더 잘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갈등해결은 당사자 합의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전문적인 제3자의 도움을 받더라도 마찬가지다. 사실 복잡하고 긴 갈등해결 과정의 경우엔 전문적인 제3자의 도움 없이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경우에도 제3자가 대신 결정을 내려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갈등해결이 아니다. 간혹 중재재판(arbitration)을 갈등해결 영역에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갈등해결'이 될 수는 없다. 당사자 합의 원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선택이 제3자의 눈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할지라도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당사자에게는 여러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당사자 합의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 협상, 합의로 해결
갈등해결 과정은 짧게 정리하면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한 후 최종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것은 갈등해결이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갈등해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열어놓고 상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절차며, 협상은 가능한 해결책을 놓고 자기 이익, 입장, 필요 등을 고려해 최선의 것을 얻으려는 절차다. 둘 다 쉽지는 않다. 대화는 자기 얘기와 주장만 하려는 당사자 때문에 막히고, 협상 또한 최대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관철시키려는 당사자 때문에 잘 진행되지 않는다. 또는 힘의 불균형 때문에 대화와 협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실 당사자들 사이 지나친 힘의 불균형을 깰 아무런 대책 없이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약한 당사자에게는 폭력적 상황이 되고 제3자가 이것을 무시한다면 직업 윤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한 최선은 약한 당사자가 힘을 키우는 것이고 차선은 과정을 진행하는 제3자가 힘의 불균형이 최대한 극복될 수 있도록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때 제3자는 중립성을 넘어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제3자의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협상이 잘 진행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면 합의가 이뤄진다. 당연히 당사자들이 합의해야 한다. 가끔 사회적 관심이 커진 갈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명확하게 드러난 당사자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오히려 당사자들을 배제시키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비공식성
갈등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감정, 상호 신뢰와 이해, 역사, 정체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의 갈등은 법정에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법정은 사건이나 문제에 대한 판단만 내려줄 뿐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공식성을 가진 갈등해결을 시도한다. 이것이 갈등해결의 또 다른 원칙이자 특징이다. 비공식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기존의 사법, 입법, 행정 체계에 따른 공식적 절차가 아니란 의미고, 다른 하나는 최종 합의가 법적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 과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갈등해결의 장점이다. 비공식적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큰 부담없이 시도를 할 수 있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 또한 갈등과 관련해 다양한 문제를 솔직히 공유할 수 있고 공식적 절차에서 다루지 못하는 감정, 상호 이해, 정체성 등의 중요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비공식성이 갈등해결의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는 것이다.
유연성
모든 갈등은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때문에 갈등해결 과정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같은 듯 다른 갈등해결 과정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연성 때문이다. 유연성은 갈등해결의 가장 큰 장점이자 미덕이다. 물론 중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이것은 갈등해결의 중심이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고 당연한 일이다. 유연성 덕분에 과정은 한 번, 또는 여러 번의 만남으로 진행될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진행될 수도 있고 중간에 쉴 수도 있다. 합의를 예상하고 시작됐지만 합의 없이 끝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은 갈등해결의 유연성 때문에 가능하고 이런 유연성이 없다면 갈등해결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갈등해결이 이론과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해결은 지금까지 얘기한 분명한 원칙과 큰 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사회의 일반적 문제해결 기제와는 조금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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