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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애국심 앞에서 스러지다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6. 3. 17. 11:11
안개 속 한반도, 미래 정책은 실종
한반도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 상황에 빠졌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고 이어서 미사일 개발의 일환으로 의심되는 로켓 발사 실험을 했다. 우리 정부는 강경 대응하기로 결정했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더 강화하고 있다. 한반도, 아니 엄격히 말하면 남한은 B-52 폭격기, F-22 스텔스 전투기, 핵잠수함 등 온갖 첨단무기가 번갈아 무력시위를 하는 곳이 됐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도 논의하기로 했다.
북한이 정말 압박을 받고 있는지, 또는 받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군사적 대응이 남한 땅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을 겨냥한 무력시위지만 모든 무기가 드나들고 배치되고 훈련을 하는 곳은 남한 땅이다. 관련 뉴스를 따라잡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렇지만 강경 대응이라는 기본적인 원칙 외에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지, 중국이 협력하지 않고 북한이 압박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럼 북한과는 영원히 관계를 끊고 살 것인지 등등 상세한 정책이나 계획은 없다. 때문에 한반도는 몇 주, 몇 개월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안개 속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예측불가능성이 무겁게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다.
안개 속 상황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남과 북이 한동안 강 대 강 대응을 계속할 것이고 그로 인해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한동안 대화 재개는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남한은 온갖 첨단 무기가 배치되는 무기 전시장이 되고, 국방 예산은 계속 증가하고, 우리는 국가 안보를 위해 일상의 안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될 거라는 점이다.
분노와 증오, 그리고 애국심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가 있은 후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쏟아냈다. 사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예고된 것이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남한 정부와 국제사회가 제재 외에 적극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북한도 중단을 표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은 우리가 별 관심을 두고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충격이 컸음을 인정하지 않고 말이다. 정부와 여당은 그런 대중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대북 강경 대응을 밀어 붙이고 미국의 무력시위와 사드 배치까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남북의 적대적 관계가 부각되는 상황에서는 항상 극단적 애국심이 형성된다. 이런 애국심은 나이, 성별, 종교, 교육수준, 생활수준을 가리지 않는다. 한반도 안에서 남한 땅, 즉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안전과 번영이 보장될 수 있다는 집단 심리가 작동하면서 애국심이 활활 타오른다. 남북이 한 민족이고 한반도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다는 현실은 과도한 의미 부여로 취급될 뿐이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적을 굴복시키시거나 제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강경 대응을 주장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서도 이런 애국심이 드러났다. 2월 중순 한 중앙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중 68%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남한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이겨야 한다는 애국심이 핵무기 보유 찬성으로 드러난 것이다. 물론 남한의 핵무기 보유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우리가 우방이라고 시시때때 강조하는 미국 및 전 세계 정상적 국가들과의 관계 단절을 감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런 극단적 애국심은 결국 ‘자기 발등 찍는 일’이 되곤 한다. 애국심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책임 묻기와 정책에 대한 객관적 판단은 흐려지고 분노와 증오에 집중한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런 물불 안 가리는 애국심은 위험하고 현실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평화적 공존을 위한 비전과 노력을 하루아침에 말살시킨다는 것이다.
애국심, 종교적 가르침도 초월
평화는 상대와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평화는 자기 집단의 울타리를 넘어 상대와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와 공존을 위한 상상과 행동을 통해 실현된다. 그런데 애국심은 상대를 거부하는 배타적 집단성에서 비롯되고 상호의존적 관계와 공존 자체를 의미가 없고 나아가 위험한 접근으로 여긴다. 애국심이 극단적이고 배타적으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문제와 관련해 애국심은 보통 상대를 제거하거나 위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흥미로운 것은 애국심이 인간의 가치 체계와 도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종교적 가르침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평화적 공존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종교가 평화의 가치를 존중하고 각자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평화적 지향과 가치는 애국심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사라진다. 핵무기 보유 찬성 비율을 보자. 한국의 종교 인구가 50% 내외이니 68%에는 결국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결국 그들에게는 종교적 가르침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종교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인지 국가가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상상하는 한반도는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남과 북의 사람들이 교류하고 함께 일을 하며,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이해와 협력이 강화돼 결국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을 극도로 증오하는 사람들도 굳이 부정하지 않는 미래의 한반도 모습이다. 그런데 애국심은 이런 평화적 상상을 모두 말살해 버린다. 평화는 애국심 앞에서 스러지고 만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평화를 상상하는 것은 매일매일 더 힘든 일이 되고 있다.
*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월간신문 종교와평화 3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평화갈등 이야기 >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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