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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명 연장, 극소수의 다수결로?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5. 2. 28. 00:00
새벽 1시 표결. 월성 1호기 원전 운영 2022년까지 연장 결정. 이해할 수 없다. 뭐가 급해서 그 시간까지 회의를 하고, 표결을 새벽 1시에 한단 말인가. 노후한 월성 1호기 폐쇄 여부를 논의한 주요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 1시에 표결을 했다는 것은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빨리 결정을 해서 문제를 봉합시키겠다는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원전 주변 주민들의 안전이 달려 있고, 전 국민의 눈이 쏠린 민감한 문제며, 향후 다른 노후 원전 결정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결정을 그렇게 밤에 도둑질하듯 처리하다니 좀 심한 말로 '제정신인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새벽에 표결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몇 명이서 자기들끼리 논의해서 전 국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럼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자. 웬 뒷북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좀 더 논의할 줄 알았다. 여론과 언론의 관심이 지대하고 주민들의 저항이 심하니 좀 더 신중할 줄 알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몇년 전과는 다르게 주민들과 여론의 압력이 심하니 그런 분위기가 반영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미 지나갔으니 이런 구질구질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어쨌든 뒷북이라도 쳐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향후 다른 노후 원전의 폐쇄 여부를 계속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고리 1호기가 문제고, 고리 2, 3, 4호기, 그리고 한빛 1호기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지금의 방식으로 원전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한다면 지속적으로 사회 갈등이 야기되고, 무엇보다 주변 주민들은 물론 전 국민이 항상 안전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와 두려움의 근본원인은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어도 현재 지구상에 사는 어느 누구도 원전의 안전을 100%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원전 문제를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영향을 받는 당사자와 국민 여론을 최대한 반영해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이번 결정의 가장 큰 문제는 전 국민의 안전이 달린 문제를 위원 몇 명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이 9명인데, 2명이 퇴장하고 결국 7명이 그 중대한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극소수의 다수결'이다. 국민 의견을 대변한다는 (국민들이 직접 그들에게 권한을 준 것도 아니다) 극소수가 결정을 했다는 것도 문제인데 결정방식이 합의, 다시 말해 전체 동의가 아니라 다수결이다. 무슨 이런 구시대적이고 비민주적인 결정 방식이 있나 싶다. 원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할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대의민주주의도 아니다. 그들이 선거를 통해 뽑힌 사람들이 아니니 말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주변 주민들이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정작 현재와 미래의 삶에 직접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논의 테이블에 앉아서 우려와 두려움을 말하지 못하고 밖에서 가슴조리며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비민주적인 상황의 극치다. 뭐 시민을 대변하는 위원들이 있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원안위 위원 중 시민단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2명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들이 주민들을 대변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들 또한 그들만의 가치와 판단 기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결정이 폐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회의라면 소수의 방청만 허용할 것이 아니라 방송으로 중계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투명성과 신뢰성이 보장될 수 있고 국민들에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제대로 여론도 수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현재 결정 방식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안전에 대한 주민들과 국민들의 우려와 두려움까지 고려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들에서 사회갈등 예방과 해결을 위해 실행되고 있는 당사자 참여 결정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나라들이 그런 방식을 이용하는 이유는 대의 민주주의의 단점을 극복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고, 무엇보다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을 적용하면 몇 명의 위원들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원전과 관련된 사람들이 참여해 같이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방식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차이는 참여자와 결정 방식이다. 참여자는 정부.여당 추천자와 장식처럼 포함된 환경단체 측 인사들이 아니라 한수원, 원전 주변 주민, 환경단체, 국민대표 등이 된다. 참여자 수 또한 동등한 수준으로 조정된다.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방식인 것이다. 한 마디로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다. 결정은 합의로, 그러니까 비민주적, 또는 극히 낮은 수준의 민주적 결정방식인 다수결이 아니라 모두의 동의로 이뤄지게 된다. 100% 합의가 힘들다면 현실성을 반영해 80, 또는 90% 동의로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런 당사자 참여 결정 방식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함께 고민하고 논의한 후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또는 그 복잡한 과정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으니 가능성은 이미 증명됐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안과 관련해 실행된바 있다), 다른 하나는 복잡하더라도 해야만 하는 사정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실 원전 문제의 핵심은 안전에 대한 이견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도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안전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고의 위험성이 아주 낮다고 말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은 낮은 위험성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이견과 상관없이 원전 사고는 치명적이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래서 원전은 설계가 복잡하고 관리가 철저하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원전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주변 주민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새롭게 등장한 두 가지 문제가 더 있다.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생긴 극도의 불안감이고, 다른 하나는 만천하에 드러난 허술한 원전 관리다. 그런데도 알아서 결정하고 알아서 운영할테니 걱정말라고? 그건 너무 오만하고 독선적인 주장이다.
노후 원전 폐쇄에 대해 주민들은 물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정부, 여당, 한수원 등은 주변 주민들이 비과학적이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로 어거지를 쓰고, 환경단체는 매사 정부 일에 딴지를 걸으며, 원전 폐쇄를 주장하는 국민들은 불순한 생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안전을 우려하는 사람들이고, 그러므로 신중을 기해 결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웃나라에서 실제 어마무시한 사고가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원전 관리의 부실은 물론 비리까지 계속 드러나고 있으니 신뢰하기 힘들다고, 그러니 모든 정보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정부와 한수원의 임무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하고 신뢰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결정하고, 결정한 것은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 방식을 통해 밀어붙이니 누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원전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든 가장 민감한 문제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갈등은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다. 자신과 자식들의 안전이 걸린 문제를 어느 누가 못본체 하겠는가. 더군다나 우리의 상황은 최악이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원전 문제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같이 해결책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을 염려하고 정부의 결정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사회 갈등은 증가할 것이다. 제발 뻔히 보이는 갈등은 좀 예방하고 줄여보자. 무엇보다 하루라도 쫌 걱정없이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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