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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중단 논란, 도-민 갈등?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5. 3. 18. 00:00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사건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것을 '사건'이라 부르는 이유는 적어도 내 눈에는 사전적 의미처럼 "문제가 되거나 주목을 받을만한 뜻밖의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무상급식 중단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수렴은 고사하고 경남교육청과도 제대로 논의를 거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결정됐으니 정상적인 정책 결정으로 볼 수 없다. 주목할만한 것은 대선주자로 한 판 뛰고 싶은 홍준표 도지사가 그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무상급식 반대 이슈를 치고 나간 것이란 정치적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지난 주 여론조사에서 홍지사는 도내 직무평가 지지율에서 50%에 육박하는 부정평가를 받아 굴욕을 겪었지만, 반대로 전국적인 대전주자 지지도와 여권 내 지지도에서는 소폭이지만 상승효과를 봤다. 이런 점을 보면 정치적 술수가 제법 고단수인 홍지사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무상급식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급식비를 내게 된 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무상급식 중단은 '뜻밖의 사건'이다.
경남 도민들은 자기들이 뽑은 도지사로부터 뒤통수를 얻어 맞은'상황이 됐다. 홍지사는 작년 6.4 지방선거에서 58.9%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그런데 선거 후 일년도 안 돼 제 갈길 가자고 자신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무상급식 중단에 반대하는 여론이 59.7%로 선거 당시 지지율보다도 높다. 선거 때 홍지사를 지지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상급식 중단 정책에는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일로 경남에서는 학부모들과 시민단체들의 항의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을 두고 어떤 보도들은 경남도 및 도지사와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는 도민들 사이에 갈등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갈등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이런 일을 갈등으로 보곤 한다. 공공정책이 관련된 일이므로 '공공갈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이것을 도지사 및 경남도와 항의하는 도민들의 '갈등'으로 부를 수 있나?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이것이 갈등이라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할 여지가 있는 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일은 정말 갈등으로 여겨질 수 있는 다툼일까? 경남도와 도민들 사이의 대립 상황을 보면 갈등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일을 갈등으로 판단하기 위해 가장 주목할 것은 당사자들 사이의 힘의 관계다. 갈등이 형성되려면 한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목적 달성과 필요 충족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다른 당사자가 저지하거나, 적어도 다른 쪽을 고민하게 만들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현안이 난관에 봉착해 실행에 어려움이 생기고, 그로 인해 당사자들 사이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형성되고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상급식 중단 결정은 이 기본 조건에서 빗나가 있다. 무상급식 중단은 이미 실행되고 있고, 현재 학부모들과 시민단체 등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경남도와 도지사에 대한 전국적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경남도의 정책 실행이 실질적으로 방해를 받고 있지 않고 되돌려질 가능성도 현재로선 거의 없다. 한 마디로 항의하는 도민들이 경남도의 정책 실행을 저지할만한 실효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의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갈등 자체가 형성되기 힘들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은 흔히 있는 일방적 정책 결정 및 실행과 그로 인한 후폭풍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갈등으로 발전될 수 있을까? 갈등이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문제의 진단과 개선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므로 현 상황이 갈등으로 발전하면 굳이 나쁠 것이 없다. 그러려면 항의하는 도민들의 힘이 경남도 및 도지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만큼 커져야 한다. 물론 경남도와 도지사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발표가 나오긴 했지만 그것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홍지사가 전국적 지지율 상승을 자신에게 더 좋은 이득으로 본다면 경남도내 지지율의 소폭 하락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남도와 도지사는 항의하는 주민들과 대화를 해야할 필요도, 협상이나 타협을 통해 무상급식 중단을 재고해야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무상급식 중단이 잘못됐다고 응답한 거의 약 60%의 여론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고 경남도와 도지사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는 행동에 나설 수 있으냐다. 그럴 경우 양쪽의 힘의 차이가 급격히 줄고, 경남도 및 도지사와 도민들 사이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형성되며, 그에 따라 경남도 및 도지사가 정책의 중단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등 및 갈등해결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갈등'이라는 용어를 쓸 때는 신중해야 한다. 또한 모든 문제와 상황에 '갈등해결'이라는 전문용어를 들이대며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당사자들이 협상 자리에 마주앉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상대의 힘을 상호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의 힘이 자신의 목적 달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상호 인지하고 피부로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상황을 갈등이라는 언어로 재단하는 것은 자칫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억압과 비민주적인 상황을 비정치적인 일로 희석시켜 시민의 권리를 부인하고 관료들의 부당한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재 경남도의 상황은 갈등이 아니라 일방적 정책 결정으로 야기된 경남도 및 도지사와 일부 도민 사이의 대립으로 정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긍정적인 상황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갈등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그래서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이 이제라도 제대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힘의 관계에 변화가 생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상황이 제대로 갈등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반대 여론이 더 힘을 얻고, 경남도 및 도지사가 여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도민들과 대화 자리에 마주앉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어쨌든 모든 변화는 경남도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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