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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사에 대한 폭력적 관심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7. 5. 00:00
'관심병사'가 새로운 시사 단어로 떠올랐다.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단어들은 온 국민에게 강제 학습을 시킨다. 모르고 살면 더 좋으련만 여전히 민주주의와 제도가 성숙되지 못한 한국사회는 사는 것도 힘든 사람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관심병사'에 대한 '관심'도 그중 하나다.
언어는 때때로 현실을 왜곡한다. '관심병사' 제도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보도로만 본다면 이 부담스럽고 황당한 '관심'은 가히 폭력적이다. 굳이 '폭력'이라는 험한 말을 들이대는 이유는 평화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의 직업병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그 대상이 된 병사들에게 정말 무언, 유언의 폭력이 가해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누군가를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관심병사'로 분류된 병사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는 이런 정의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심 병사의 분류 자체는 심하게 일방적이고, 구시대적이며, 지극히 군대답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전투 또는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도구 또는 자원으로 보고, 때문에 각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을 세밀히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군조직의 유지와 관리의 효율성만을 따져 사람을 분류해 놓았다. 군은 관심병사 제도가 과거보다 진전된 제도라고 어거지를 부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조직의 수준에 맞춰진 자체 판단일 뿐이다. 징병제에 의해 억지로 군생활을 하는 병사들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시각에서도 그것은 지나치게 인권침해적이고 나아가 폭력적인 제도다. 관심병사 제도를 시행하면서 군은 스스로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수준이 낮고 인권 침해와 폭력 수준이 높은 군이 자체로 개발하고 결정했으니 그것이 사회의 수준과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군의 입장에서 보면 징병제로 들어온 다양한 병사들의 군기를 잡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병사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애초 관심병사 제도가 관심과 배려가 아니라 군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대상이 생각과 판단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관심병사 제도는 2005년 총격 사고 이후 국방부가 내놓은 특별 대책인데 목적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병사들을 특별 관리해 군기 사고, 총기 난사, 자살 등을 예방하려는 것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범죄 예방 시스템처럼 일을 저지를 사람을 미리 관리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제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영이 문제다. 거기에 얼마나 정교한 절차와 인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느냐에 따라 작동 방식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심병사 제도 시행 이후에도 군기 사고, 자살 등은 줄지 않았고 최근 보는 것처럼 오히려 '관심병사' 제도의 부작용이 원인이 돼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난 것을 보면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관심병사 제도가 오히려 군대 내 왕따와 차별을 조장하는데 한 몫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병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조직 보호와 기강 유지를 위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한 결과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병사들을 A, B, C 등급으로 나누고 특별관리대상인 A 등급에는 자살계획, 시도자와 사고유발 고위험자를, B 등급에는 결손 가정(한부모 가정), 경제적 빈곤자(기초수급자), 성격 장애자, 구타 및 가혹행위 우려자 등을 분류해 놓았다. 이 황당하고 차별적인 분류의 근거도 의심스럽지만 분류 후 제대로 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모두에게 공개돼 왕따와 차별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니 이것은 폭력적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학부 학생들 세미나 튜터를 한 적이 있었다. 각 과목마다 토론을 위한 세미나 시간이 있는데 그것을 담당하는 조교와 같은 역할이다. 세미나 튜터는 맡은 학생들 중 '관심'을 가져야 할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면 너무 평범하게 생겼는데 '학습의 어려움'이나 '가벼운 난독 증세' 같은 것들이 기록돼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고, 해당 학생에게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선입견을 가지고 대해서도 안 된다. 다만 참고사항으로만 알고 있으면서 그야말로 '관심'을 유지하고 혹시 예상치 못한 일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건 특별한 관심이라기보단 학생과 세미나 튜터를 위한 학교의 작은 배려에 가까웠다. 내가 그 문제를 치료해 줄 사람도 아니기에 내게도 그 정보는 그야마로 작은 참고사항에 불과했다. 그런데 군은 관심병사 제도까지 만들어 놓았음에도 진정한 관심을 받아야 할 병사들에게 작은 배려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해당 병사에 대한 폭력이 되게 만들었으니 별 기대가 없음에도 군의 무능과 무책임을 접할 때마다 분노가 솟구쳐 뒷목을 잡게 된다.
한국사회가 한동안 무상급식 문제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그 논란의 핵심은 사실 제도화된 관심과 진정한 배려 사이의 문제였다. 무상급식을 하든, 아니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급식 지원을 하든 통계적으로 굶는 학생이 없어진다는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화된 관심이 배려없는 관심으로 변질돼 민감하고 여린 아이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 왕따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제도화된, 또는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관심은 그러므로 정교하고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이 된 사람에게는 없으니만 못한 폭력적 관심이 되기 때문이다. 꼭 관심병사 제도가 아니더라도 군은 어쨌든 비슷한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군이 사회와 분리된 경직되고 억압적인 구조고, 더군다나 징집제로 병사들을 모집하고 있으니 그들이 무사히 복무 기간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살피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특정 병사를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고, 인권은 고사하고 인간적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폭력의 상처만 남기는 지금과 같은 관심병사 제도는 과감히 폐기처분해야 한다. 큰 기대는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억지로 끌려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위해 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사들에게 조금이라도 진정한 관심과 배려를 쏟을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기를 바라고, 열심히 감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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