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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는 있고 '반팔레스타인'은 없다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25. 6. 2. 18:37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의 한 야외 몰에서 누군가 던진 화염병으로 12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상자들은 52-88세 사이고 그중 한 명은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는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급습한 하마스에 끌려가 현재 가자지구에 억류되어 있는 인질들을 기억하는 집회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범행 직후 체포된 범인은 45세의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테러 공격이었다며 범인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과 정치권은 “반유대주의” 공격이라며 미국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22일 워싱턴 디씨의 유대인 박물관 밖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외교관 부부 살해 사건 뒤 10일 만에 일어난 것이라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워싱턴 디씨 사건의 범인은 31세의 남성으로 역시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다. 당국에 의하면 그는 체포된 뒤 “나는 팔레스타인을 위해, 그리고 가자지구를 위해 이 일을 했다”고 밝혔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 테러라며 비난했고 워싱턴 디씨 시장 또한 “우리는 반유대주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입장을 밝혔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모두 팔레스타인 지지자라는 점과 미국 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범인들의 동기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파괴, 그리고 민간인 학살과 가자지구 봉쇄를 통한 식량의 무기화 등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임을 말해준다. 또한 이스라엘의 학살과 가자지구 봉쇄에 대한 미국의 묵인, 그리고 지속적인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관련됐음을 보여준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에 대응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시작된 직후부터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파괴와 주민 학살이 알려졌고 미국에서는 계속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있었다. 2024년 봄부터는 전국 대학 캠퍼스에 텐트 시위가 번졌고 대다수 대학이 경찰을 불러 이를 강제 해산시켰다. 캠퍼스 시위, 그리고 캠퍼스 내에서 반대 입장을 가진 학생들 사이 충돌이 일어나자 미국 의회는 대학 총장들을 청문회에 불러 ‘반유대주의’ 확산을 묵인했는지 추궁했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이스라엘 규탄 및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반유대주의’ 표출로 규정하고 대학들과 학생들을 압박했다. 대학이 시위 학생들에 대해 강경 조치를 취하면서 캠퍼스 시위는 잠잠해졌으나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주민 학살과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한 인도주의 재난 상황이 더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확고한 입장은 많은 미국인을 분노와 절망에 빠뜨렸다. 지난 5월 22일과 6월 1일 발생한 사건은 가자지구 상황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학살 중단을 요구하는 미국인들, 그리고 미국 내 거주자들 중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에 대한 분노가 극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람 목숨을 겨냥한 범죄는 절대 용인될 수 없지만 이들을 범죄로 내몬 건 결국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다.
미국 내 유대인을 겨냥한 범죄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건 ‘반유대주의’ 담론이다. 미국 정치권과 대학 등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주민 학살 등의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모든 시위를 ‘반유대주의’로 몰아붙이고 있다. 앞의 두 범죄에 대해서도 가자지구의 참혹한 상황과 이스라엘의 온갖 전쟁범죄는 언급하지 않고 너무 익숙하고 쉽게 ‘반유대주의’를 거론하고 있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증오하고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에서 있은 유대인 증오, 차별, 박해 등과 관련해 언급되기 시작한 반유대주의가 담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는 소수 민족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차별이다. 또한 무고한 유대인에 대한 억압과 배척이다. 그런데 반유대주의는 이제 억압받고 차별받는 소수 민족의 담론이 아니라 힘을 가진 집단이 소수를 억압하는 담론으로 진화했다. 사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 유대인은 더는 억압받는 소수가 아니다. 오히려 막강한 정치적, 경제적 힘을 행사하는 민족 집단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파괴와 학살을 규탄하고 가자지구 및 팔레스타인에 연대를 표하는 집회에 ‘반유대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집회 참여자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와 군을 규탄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반유대주의’가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을 부정하는 담론,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담론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규탄을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는 건 전 세계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 규탄에 동참하고 이스라엘 국민조차 자국 정부에 전쟁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물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는 유대인을 증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직접적인 동기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과 식량 무기화 등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섞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범죄의 근본적인 동기는 보지 않고 반유대주의 프레임 속에 가두려는 미국 정치권과 언론의 접근은 비슷한 범죄를 부를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하고 동시에 위험한 접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반유대주의를 강조하기에 앞서 오히려 우려하고 경계해야 하는 건 ‘반팔레스타인’ 정서와 정책이다. 세계 곳곳에서 정부, 정치권, 그리고 언론이 이스라엘 규탄 집회와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에게 ‘반유대주의’ 딱지를 붙이는 건 ‘반팔레스타인’ 입장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가자지구에서 학살이 계속되고, 식량난으로 기근이 창궐하고, 식량 배급을 받다가 수십 명이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을 외면하고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것 또한 ‘반팔레스타인’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반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가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팔레스타인 지지가 주류 사회의 정서와 담론이 아니어서인지 ‘반팔레스타인’ 입장은 전혀 비판 내지 감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 때문에 유럽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성 내지 양심의 가책으로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허락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후에는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하에 두고 온갖 억압과 탄압을 가해왔다. 이런 이유로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반복적으로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과 전쟁을 해왔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과 민간인 학살 및 납치는 이런 배경하에서 생긴 비극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학살은 팔레스타인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를 이용해 ‘반팔레스타인’을 정당화하고 있고 미국과 많은 유럽 국가가 여전히 이에 충실히 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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