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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독재정권 몰락하다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24. 12. 10. 15:53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시리아 북부의 작은 주 이들리브(Idlib)만을 장악하고 있던 반군이 이들리브에서 가까운 알레포를 재장악한지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지난 11월 30일 반군인 HTS(Hayat Tahrir al-Sham)가 알레포를 재장악했을 때 세계는 시리아 내전이 재점화됐다고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가 당연히 반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의 공격을 받자 거의 도주했고 러시아가 반군에 폭격을 가했지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반군은 수도인 다마스쿠스(Damascus)를 향해 남쪽으로 진군했고 12월 5일에는 하마(Hama)를, 7일에는 홈스(Homs) 함락시켰다. 한편 남부의 또 다른 반군 세력은 북진해서 남부 도시 다라(Daraa)를 함락시켰다. 이제 남은 건 다마스쿠스 뿐이었다. 12월 8일 마침내 반군은 수도를 함락시켰고 탈출한 알-아사드 대통령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러시아는 알-아사드 대통령과 가족이 모스크바에 도착했고 망명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시리아의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았고 두 부자가 독재 통치를 한 기간은 무려 53년이었다. 반군은 가는 곳보다 환영을 받았고 감옥의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으로 2011년 시작돼 13년 이상 계속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도 끝이 났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랍 국가들에서 번졌던 ‘아랍의 봄’을 계기로 남부 도시 다라의 젊은이들이 반정부 그라피티를 그린 것이 시발점이 됐다. 시리아 보안군은 이들을 체포해 고문하고 약 100명을 살해했다. 이후 수감자 석방과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시리아 정부는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무력 진압했고 무차별 살해도 저질렀다.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됐고 7월부터 정부와 반정부 집단 사이 무력 충돌이 생겼고 내전으로 이어졌다. 내전은 수년에 걸쳐 참혹하게 진행됐고 학살, 고문,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 민간시설 파괴 등 온갖 전쟁범죄가 난무했다. 가장 악랄한 전쟁범죄는 알-아사드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자국민을 학살한 것이었다. 시리아 정부는 2013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85차례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50만 명이 넘었다. 또한 시리아 내전은 대규모의 난민을 발생시켰는데 2023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시리아 난민은 약 640만 명이었다.
반군이 거의 10일 만에 시리아 정부를 몰락시키고 독재정권을 끝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독재정권 몰락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국제사회는 시리아가 새 정부를 무사히 안착시키고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HTS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HTS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며 2011년 알카에다의 지부 형태로 설립됐고 IS도 HTS의 설립에 관여했다. HTS는 2016년에 알카에다와 관계를 끊고 이름도 알 누스라(Al-Nusra)에서 HTS로 바꾸었지만 미국, 영국, 튀르키예, 유럽연합 등 많은 국가가 여전히 HTS를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집단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이런 우려 때문인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후 HTS의 수장인 알-졸라니는 시리아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를 수립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보복이 있어서는 안 되고 시리아는 모든 시리아인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1년에 시작된 혁명의 길을 완성해야 한다”면서 “모든 시리아인의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HTS는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HTS가 제대로 된 통치 경험이나 선례를 보여준 것이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리브주에서의 인권 침해로 HTS가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점도 지적하고 있다.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종식된 가운데 시리아 총리는 HTS에 정권을 이양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 유럽연합 등이 HTS에 대한 테러집단 지정을 해제하고 HTS의 과도정부를 인정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현재는 HTS의 행보를 관망하며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HTS가 시리아 내 다양한 무장세력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 HTS는 다양한 무장세력 및 반정부 집단들과 유혈 충돌을 일으켰고 이런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알-아사드 정부를 지원했던 러시아와 이란이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알-아사드의 망명을 허락한 러시아는 시리아 내 군사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이미 HTS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군 진격 상황에서 시리아 지원을 포기한 이란 또한 시리아 내 군사기지 및 군시설 철수를 두고 HTS와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리아의 미래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난민 문제다. 반군과 정부군 사이 내전이 공식적으로 끝나면서 유럽 각국은 벌써 시리아 난민 귀환을 압박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시리아 난민 신청 절차를 중단했고 영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그리스 등이 난민 신청 절차를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도 조만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정세가 불안해 난민을 즉각 추방하진 않고 있지만 귀환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은 시리아 난민 귀환의 기회가 생겼지만 아직은 불투명하다며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신중한 태도를 취해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반군과 시리아 정부 사이의 내전은 끝났지만 시리아 내 무력 충돌이 모두 중단될지는 알 수 없다. 시리아 내에는 여전히 많은 무장세력이 각자의 지역을 지배하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HTS가 포용적인 태도로 이들과 협상을 하고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또한 HTS가 이슬람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적어도 당분간 시리아는 정치적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대규모 난민 귀환이 시리아의 안정을 보여주는 가장 믿을만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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