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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장갑차와 군사문화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3. 8. 9. 10:10
지난 7월 21일 오후 2시가 지난 환한 대낮에 서울시 신림동 인근 상가 골목에서 2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남성 1명이 숨지고 다른 남성 3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곧 체포되었는데 경찰에 따르면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차 범행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8월 3일 오후 6시경에는 역시 20대 남성이 경기도 서현역 인근에서 차량을 몰고 역사 앞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은 후 흉기를 들고 지하철역과 이어진 백화점으로 들어가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둘렀다. 남성 4명, 여성 5명이 부상을 당했고 범인은 곧 체포됐다. 피해자 중 60대 여성은 며칠 후 사망했다.
신림역 흉기 난동 뒤 온라인에는 무차별 살해 범행을 예고하는 글이 150건 이상 올라왔다. 8월 7일까지 경찰은 살인 예고 글과 관련해 154건을 입건하고 그중 54명을 검거했다. 경찰은 다중 밀집 장소에 경찰관 2만 2천 명 이상을 배치했고 4일부터는 범행 장소로 지목된 서울 곳곳에, 그리고 전국 시도마다 한 대씩 전술 장갑차를 배치했다. 대규모 축제가 열리는 곳곳에도 장갑차가 등장했다. 강남역 지하쇼핑센터 등에는 소총과 권총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가 순찰을 했다. 도심 한복판에 중무장한 경찰과 장갑차라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초기에 범죄 분위기를 완전히 제압해 국민들이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겁을 줘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실효성이 있을까? 기동성이 없는 장갑차는 범죄 예방보다는 경찰 말대로 ‘겁주기’ 용이다. 중무장한 경찰특공대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몸이 가벼운 범죄자들이 더 기동성이 좋을 것이다. 또 무차별 공격 범죄자들이 잡히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닐 것이다.
대낮 도심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건 분명 엄중한 상황이고 정부와 경찰은 당연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에 장갑차 배치가 적절한 조치인지는 의문이다. 경찰이 배치한 장갑차는 군의 장갑차처럼 기관총 발사대를 갖추고 있고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 폭탄 테러나 총기 난사가 아닌 칼부림으로 일어나는 범죄에 장갑차로 대응하는 건 효율적이지도 어울리지도 않아 보인다. 또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몇몇 장소에 10여 대를 배치하는 게 범죄 예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럼에도 경찰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두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국민에게 경찰이 열심히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고, 다른 하나는 가장 큰 공권력의 상징인 무기가 가장 ‘자극적’인 전시 효과를 낼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장갑차와 중무장 경찰특공대 배치에 안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보기에는 좋지 않지만 상황이 엄중하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리에 그리고 축제 장소에 장갑차 같은 전쟁 무기가(경찰용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전쟁용이다) 배치되는 건 평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기의 배치는 비록 낮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사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장갑차 배치보다 더 놀라운 건 우리 사회가 장갑차 배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국민도 언론도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우리가 공권력을 가진 군과 경찰이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오랜 군사 및 독재 정권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북의 대결 상황에서 무력 시위와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나아가 안전을 위한 최선의 대응은 ‘무력’이라는 생각에 매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징집제가 있는 사회에서 대다수 남성들에게 장갑차 같은 중화기는 아주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도시에서 그런 무기를 보는 것에 어색함은 있어도 큰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무력 증강과 사용 가능성이 언급되고, 무기가 안전을 보장한다는 담론에 익숙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아가 남북의 지속적인 무력 대결과 상시적인 전쟁 준비 상황에서 첨단 무기의 개발과 확보, 심지어 전술핵 전개 등이 주요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모두는 군사문화가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에 밀착되어 있고 우리 각자가, 그리고 사회가 군사문화에 익숙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전쟁을 준비하고 징집제가 유지되고 심리적으로 무력 의존도가 높은 사회에서 군사문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군사문화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다른 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 6월 10년 만에 10월 1일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도 언론이나 여론의 별다른 지적이나 반응이 없었다. 시가행진이 폐지된 이유는 그것이 선진국 민주사회의 모습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선진국에서는 공개적으로 군사력을 과시하고 첨단 무기를 전시하는 시가행진 같은 걸 하지 않는다. 굳이 군사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불가피하게 ‘무력’을 갖춰야하는 점은 인정하지만 무력을 사용할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력에 대한 의존과 경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 대결 상황에서 ‘평화를 위해 무력이 필요하다’는 왜곡되고 군사문화에 경도된 주장에 익숙해져 있다. 전쟁을 겪은 사회라면 무력 사용에 대한 경계와 조심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다. 계속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에 존재하는 군사문화의 끈질긴 생명력에 익숙하고 그것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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