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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청산, 피해자 외면하는 정치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3. 3. 14. 13:41
아시아의 과거사와 관련해 최근에 나온 세 개의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단연 관심을 끈 첫 번째 뉴스는 한국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피해자들이 1995년 시작해 2018년 마침내 대법원 판결을 통해 얻어낸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한국 정부가 말소해주는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있은 후에도 일본 정부는 강제 징용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전범 기업들도 뒷배인 자국 정부를 믿기 때문인지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과거사를 청산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한국 내의 재단과 기업 모금을 통해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책임을 한국 정부가 모두 떠안겠다고 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이런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리고 이것으로 사안을 종결지으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웃 국가인 일본과의 관계 유지 및 개선은 한국에게 있어서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일본이 전범 국가고 과거사를 전혀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를 위해 국내적 동의 절차를 만들고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절차와 노력이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이라면, 특히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것이라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강제 징용 대법원 판결은 개인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결과다.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그 결과를 무효화할 권리가 없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정치와 외교를 위해 개인의 권리와 정의 구현 포기를 종용하는 상황이다. 더욱 황당한 건 일본 정부가 뻔뻔하게도 한국 정부의 제삼자 배상 계획 발효 후에도 강제 징용을 부인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관심을 끈 뉴스는 베트남 전쟁 학살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승소에 대한 한국 국방부의 항소 제기 방침을 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베트남인 응우옌티탄은 1968년 2월 한국군이 민간인 74명을 학살했을 때 가족을 잃고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그는 2020년 4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 7일 법원은 원고에게 약 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한국 국방부가 항소해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학살을 인정하지 않음을 의미했고, 이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입장을 밝힌 것이다. 베트남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양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맞고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에 공식적인 사과까지는 필요 없다고 했던 베트남 정부가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까지 하겠다는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관심을 끈 세 번째 뉴스는 유엔에서 온 소식이었다. 지난 3월 10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필리핀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필리핀 위안부 피해 여성 지원단체 회원 24명이 제기한 진정을 검토한 결과였다. 위원회는 피해자들이 필리핀 정부에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를 지지해줄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했지만 정부가 노력하지 않았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차별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필리핀 정부가 남성 참전 군인들에 대해 교육과 의료 혜택, 장애 및 사망 연금 등을 제공하고 보호하는 한편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본과의 평화조약 체결 후 배상을 요구할 입장이 아니라는 견해를 줄곧 고수해왔다”고 지적했다.
세 개의 뉴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과거사 청산, 피해자, 정치, 그리고 외교다. 그리고 세 가지 사안에서 중심에 서야 하고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건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식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 정치와 외교가 작동하고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위 뉴스들을 보면 반대로 정치가 피해자들의 노력을 방해하고 폄하하고 있음을, 그리고 외교가 어깃장을 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 베트남의 학살 사건 피해자, 그리고 필리핀의 위안부 피해자들 모두 오랜 세월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고 정당한 배상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정치는 진실을 축소하고 개인의 피해를 폄하하고 있다. 인상적인 점은 일본이 강제 징용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현재의 한국 정부가 베트남 학살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고, 외교가 피해자들에게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필리핀 정부와 한국 정부의 행태가 무척 닮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국 정치와 외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피해자들의 오랜 문제 제기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국적에 상관 없이, 그리고 자국의 정치적 이익에 상관 없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피해자고 그것은 인류를 지탱하는 인도주의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작은 노력이자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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