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주의와 세계시민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1. 8. 15. 10:16
민족주의의 확산
“난민을 도우면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돈이 줄어드는 거 아닌가요?”
“세계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면 우리의 국익을 해치게 되지 않나요?”
내 책 <정주진의 평화특강>을 읽은 고등학생들에게 받은 질문이다. 책에서 비판적으로 다룬 난민 반대, 쓰레기 수출, 정부의 로힝야 학살 외면, 라오스 댐 붕괴 문제 등을 읽고 한 질문일 것이다. 신박한 질문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청소년들이 약자를 위한 정의보다 정의를 외면해서라도 국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성향이 여전히 강한데 그것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까지 세계 문제를 왜곡해서 보게 만드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민족-국가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살고 있고 그들 중에는 한국 국적을 얻은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단일 민족 국가라고 얘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주의에 기반해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를 강조하는 주장이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갈수록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는 확연해진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민족주의’의 강조는 다양한 소수 집단을 배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밀하고 섬세한 접근을 하찮고 쓸데없이 까다로운 것으로 치부하는 논리와 주장을 편다.
세계화를 언급할 필요조차 없고 전 세계가 동일 감염병으로 공동의 위기에 직면한 현재에도 민족주의는 건재하고 여전히 논란의 주제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렇다.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은 우리처럼 거의 단일 민족 국가인 사회의 결속력을 다지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공격에 저항하는 힘을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는 다수 집단의 이익과 통제, 나아가 억압까지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된다. 자기 민족 또는 국가에 불리한 사실과 사건은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보편적인 정의 담론이나 세계가 공동으로 다뤄야 할 문제까지 외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최근 역사 논쟁과 담론의 확대, 역사 교육 강조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 담론이 확대 및 강화되고 있다. K-culture, K-pop, K-food 등 다양한 표현을 통해 민족주의와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족주의를 결합한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확대하는 건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봐야 하는 일이다. 민족주의가 우리가 가진 것들과 주장을 모두 미화하는 수단과 핑계가 된다면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선진국이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에 민족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는 자칫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은 모두 정당화하고 국익을 해친다고 생각되는 건 모두 외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도 가지고 있다. 내게 ‘국익’을 염려하는 질문을 했던 학생처럼 말이다. 국익을 위해 다른 사회와 문화를 왜곡하거나 우리가 가진 힘을 이용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정당화하는 데 민족주의가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세계시민 교육을 받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민족주의의 굴레를 벗고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편적 평화와 정의 담론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토론할 수 있게 독려하는 게 바람직하다.
세계시민의 보편적 정의와 기준
8월 15일이다. 이보다 더 민족주의와 관련된 국경일은 없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억압과 탄압, 그리고 현재 일본의 역사 부정과 지속적 공격은 세계 보편적 정의 담론과 기준에 의해 평가될 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 담론보다는 세계시민의 시각과 담론을 통해 접근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고 바람직하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한풀이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고 이웃 국가인 일본, 그리고 그곳 사람들과의 공존을 위해서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사의 일부분인 우리의 사례를 통해 인류의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기 때문이다.
세계시민 시각과 담론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접근을 할 수도 있다. 바로 일본의 과거를 바로잡는 것과 별개로 8월에 기억되는 일본 원폭 투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한 전쟁범죄 중 하나로 해마다 전 세계가 기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만 원폭 투하에 무관심하다. 덩달아 우리 사회의 원폭 피해자들도 주목을 받지 못한다. 북한의 핵무기로 한반도 비핵화가 중요한 사회적 현안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웃 국가에서 있었던 세계사적 비극인 원폭 투하엔 무관심하다. 물론 일본이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원폭 투하 피해를 강조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시민사회는 일본의 전쟁범죄와 원폭 투하를 구분하고 있고 원폭 투하 희생자들을 기념한다고 해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묵인하는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편적 윤리와 정의의 기준을 모든 일에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핵무기에 반대해야 하는 세계시민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사실 민족주의를 벗어나 세계시민의 시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국익을 해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세계시민의 책임과 국익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다수의 선진국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기준을 세우거나 적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회에 대한 우리 기업, 단체, 개인의 부당한 일을 지적하고, 다른 사회에서 발생한 부정의한 일을 외면하는 우리 정부나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시민사회, 활동가, 학자, 언론 등은 오히려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잘못이나 정의 외면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보편적 정의 담론과 기준에 맞추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8월 15일을 맞아 한번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적어도 민족주의가 세계의 정의와 세계시민의 역할을 저해하는 굴레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그런 굴레를 씌우지 말고 그들이 좋은 세계시민이 되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사 청산, 피해자 외면하는 정치 (2) 2023.03.14 평화적 공존의 공동체와 사회 (0) 2022.03.18 군대와 인권 (0) 2021.04.30 '학교 폭력',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0) 2021.02.18 교회는 사회와 공존할 수 있나-코로나시대 교회의 민낯 (0) 202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