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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인권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1. 4. 30. 14:33
먹고 싸고 씻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곳
문제의 발단은 소셜네트워크에 올라 온 군부대 식판 사진이었다. 음식이 너무 형편없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코로나19 때문에 격리된 병사들에게 제공된 식사였다. 이런 일이 밖으로 알려지자 해당 부대 장교들이 병사들의 휴대폰을 뺏고 “이러면 너희들만 힘들어진다”고 협박성 발언을 한 사실이 연이어 드러났다. 식판 사건 후에는 더 기막힌 일이 드러났다. 육군훈련소에서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훈련병들에게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세면, 양치, 샤워를 못하게 했고 10일 정도나 샤워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훈련으로 매일 땀범벅이 될텐데 말이다. 화장실 사용도 제한해서 물을 마시지 않거나 심지어 참다가 바지에 소변을 싼 훈련병도 있었다고 한다. 군대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억압적인 법과 구조로 병사들의 입을 막고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과 관련해 두 가지 점이 놀라웠다. 한 가지는 21세기에 포로도 겪지 않을 수준의 가혹한 대우를 대한민국 병사들이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군대가 필연적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자발적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강제 징집된 청년들인데 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우리 사회의 미적지근한 대응이었다.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국방부장관을 질타했지만 언론이나 여론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가, 그것도 국가가 필요에 의해 징집한 병사들에게 이뤄졌으면 사회가 뒤집히고 정부와 국방부에 비난이 쏟아져야 하는 데 말이다.
군대는 원래 그래...
언론과 여론의 반응이 무덤덤했던 이유는 그런 일이 ‘군대’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은 청년들이 국가를 위한 의무라는 이유로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아니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모든 시간, 에너지, 정신을 쏟으며 사는 곳이다. 무엇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유와 권리의 제한을 감수하면서 사는 곳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국가가 한 인간에게서 그 모든 중요한 것을 일시적으로 징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국가는 더욱 대우를 잘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힌 군대문화는 군대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대해서 ‘군대니까...’라며 묵인하는 사회 정서를 만들었다. 비인간화, 인권 침해, 자유 제한, 그리고 심지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인 제대로 먹고 쌀 권리까지 침해당해도 우리 사회는 무덤덤하다. ‘군대’니까 모든 게 ‘이해된다'는 식이다.
국방부는 장병들의 인권 운운하지만 군대는 기본적으로 ‘인권’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사람을 강제로 격리시키고 자유를 제한하면서 인권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럼에도 군대가 허용되는 이유는 ‘안보’에 대한 욕구와 군사력 강화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강제 징집의 문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솔직하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래도 한 가지는 합의돼 있는 것 같다. 장병들에 대한 대우는 개선되어야 하고 최소한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게는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이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군대와 인권의 부조화를 조화로 바꾸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가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장병들의 인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준은 군대가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의 인권 수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 사회와 군대의 ‘안보’ 임무와 욕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 안전과 안보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국가와 사회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건 또 다른 모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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