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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은?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21. 8. 12. 17:41
미국, 20년의 아프간전쟁을 끝내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완료돼가고 있다. 8월 말까지는 철수를 마칠 계획이다. 탈레반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간 정부 통치 하에 있는 주요 도시들을 차례로 함락하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미군 철수 후 한 달 안에 수도 카불이 함락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과의 평화회담에서 탈레반은 미군 철수 후에도 주요 도시는 점령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군 철수가 완료되기도 전에 이미 탈레반은 약속을 깨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공격은 계속하고 있지만 변화된 상황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프간전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군 철수가 아프가니스탄에 어떤 의미인지, 미군 철수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보면 시간의 문제일 뿐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공격 후 한 달도 안 돼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탈레반 정권이 테러범인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는 극단주의 이슬람 정권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의 목표는 탈레반 정권을 몰락시키고 빈 라덴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탈레반의 손아귀에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구출한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작전명은 ‘자유의 지속’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에서 구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전쟁은 미국인들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제물이 됐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2020년 중반까지 5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여기엔 집계가 되지 않은 전쟁 초기 사망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사상자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1-6월 사이에만 1,600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전년보다 47%나 증가한 숫자다.
처음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몰락시킨 후 미국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미군과 동맹군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적개심과 친미 아프간 정부의 무능력 때문인지 탈레반 세력은 일부 지역에서 계속 지지를 받으면서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했다. 이제는 정권 탈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프간전쟁에서 아프간내전으로
미군 철수가 시작된 후 탈레반의 세력 확장이 연일 보도되자 미국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아프간 지도자들이 "자신을 위해 싸우고 그들의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뻔뻔한 소리다. 현재 아프간 정부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세운 친미 정권이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전쟁의 주요 당사자가 아니었다. 미국과 탈레반 사이 전쟁 속에서 미국과 미군에 의존해 정부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미국은 탈레반과의 평화회담에 아프간 정부를 끼워주지도 않았다. 아프간 정부는 따로 탈레반과 평화회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미군 철수 완료가 임박했고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장악해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당신들 나라는 당신들이 지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이 수도를 함락할 것을 예상해 이미 대사관 인원의 대폭 감축이나 철수까지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철군에 대비해 30만 명이 넘는 아프간 군대를 훈련해왔고 앞으로도 아프간 공군에 대한 공중 지원과 아프간군에 대한 식량과 장비 지원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프간군이 탈레반에 맞서기엔 역부족임에도 미국이 철수를 감행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동시에 아프간전쟁이 이제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 내전이 됐음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이제 아프간 정부는 냉전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미국의 대리전을 하게 될 것이고 지금으로선 아프간 정부가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프간 정부는 풍전등화의 상황이고 탈레반은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얼마 동안이 될지 모르지만 아프간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업고 싸우는 건 결국 치열한 내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의미한다. 피해를 줄이려면 긴 내전보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는 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탈레반은 극단 이슬람 세력이고 정권을 잡는다면 과거와 같은 혹독한 통치를 할 것이다. 미국과 동맹국에 협조한 사람들을 색출해 처단할 것이고, 여성의 사회활동과 교육을 포함해 그들이 ‘서구식’이라 부르는 모든 것을 없애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러니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맹렬히 싸우면 내전이 길어지고,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 일상이 후퇴하고 안전과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니 말이다.
사라지지 않는 9.11 테러의 그림자
아프간전쟁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정당하지 않은’ 전쟁에 파병을 했고 그로 인해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세력들에게 미국의 동맹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전투병은 아니었고 재건 및 보건 지원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분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군대의 깃발을 내걸고 군의 지휘 하에서 이뤄진 일이었고 결국 미군에 협력한 일이었다. 그 결과 2004년과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3명의 한국인이 무장세력에 납치돼 처형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이 져야 할 책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아프간전쟁에 일조를 한 나라로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탈레반이 새로 점령한 지역에서는 이미 과거에 한국군, 한국병원 등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색출하거나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에게 물으면 사람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들과 가족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한국 정부에 현지 탈출과 이주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어떤 낙인이 찍힐지, 그것이 우리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다.
다음 달이면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20주년이다. 3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그런 비극에 올바른 방식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전쟁과 증오를 확산시킴으로서 전 세계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전쟁,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 난민 혐오, 반이슬람 정서 등 많은 문제는 9.11 테러 이후 미국, 그리고 동맹국들의 잘못된 대응에서 비롯됐다. 극단 이슬람 무장세력들,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해 테러 공격을 자행하는 ‘외로운 늑대’가 세계 곳곳에서 늘고 있고,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테러가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장세력들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다른 한편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시작한 두 개의 전쟁인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에 지친 미국은 군을 철수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도 올해 말까지 미군을 철수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 이제 세계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벌어질 일, 그리고 그것이 세계 곳곳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마치 숨을 죽인채 폭풍 전야를 맞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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