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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공격 당하다?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20. 10. 31. 17:22
표현의 자유, 반복적 공격
10월 29일 프랑스 니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안과 밖에서 끔찍한 공격이 발생해 세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목숨을 잃은 한 명의 여성은 참수를 당했다. 2주 전인 16일 한 교사가 목숨을 잃은 방식과 같다. 둘 다 무슬림 청년이 저지른 공격이었다. 참수는 IS가 자행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케 했는데 두 명 모두 IS 가담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을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 살해의 직접적 동기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해당 교사가 '표현의 자유' 수업에서 사용한 것이었다. 교사는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지만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니스에서의 공격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고, 참수 또한 교사 살해를 모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간 시점에는 표현의 자유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두고 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 국가들과 터키의 신경전이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교사의 장례식이 열린 날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우리의 미래를 원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절대로 (우리의 미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재확인했고 교사를 비난한 영상을 공유한 모스크는 6개월 동안 폐쇄조치했다. 그에 앞서 10월 2일에는 무슬림이 많은 이민자 거주지역을 방문해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해 이슬람은 전세계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하고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방해하고 프랑스의 가치를 거스르는 무슬림들의 행동을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과 이슬람 근본주의 비난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노골적인 비난으로 응수했고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는 프랑스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기독교 문화의 배경을 가진 서유럽 국가들은 프랑스를 지지했고 기독교 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 사이 긴장이 형성됐다. 니스 성당에서의 공격은 그런 와중에 생겼다.
이번 공격의 배경에는 9월 초 샤를리 에브도가 그동안 실었던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12편의 만평을 모아 특별판을 발행한 일이 있다. 무함마드 풍자 만평이 발단이 돼 12명이 목숨을 잃은 2015년 테러사건 수사가 마무리 돼 9월 2일 첫 재판이 열렸고 그것을 기념한 것이었다. 평소보다 2-3배 많은 양을 인쇄한 특별판은 당일 모두 품절됐다고 한다. 이것이 말해주는 건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풍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거다. 그들이 모두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무함마드 조롱에 동조하는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샤를리 에브도가 무함마드 풍자 만화로 무슬림들과 갈등을 겪은 건 2006년부터였다고 한다. 만평은 근본주의자들에게 압도당했거나 머리에 폭탄이 꽂혀 있는 무함마드를 실었고 이에 분노한 이슬람 단체들이 소송을 걸었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자체를 금기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롱하는 만평이니 말이다. 프랑스 법원은 "무슬림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일부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그림이라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샤르리 에브도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단에 힘을 얻은 샤를리 에브도는 2011년 '아랍의 봄' 시기에는 무함마드를 알몸으로 표현하고 성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만평까지 실었다. 그런 만평들로 인해 샤를리 에브도는 2015년 테러 공격까지 받게 됐고 프랑스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샤를리 에브도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테러는 2015년 테러 사건의 반복 같다. 샤를리 에브도가 지난 만평을 다시 실었고, 그것을 이용해 한 교사가 수업을 했고 그에 학부모들이 항의를 했고 반감을 가진 두 명의 무슬림 청년이 각각 해당 교사를 죽이고 무고한 시민들까지 죽인 것이다.
사회적 가치, 포용적 방식의 필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권리이자 중요한 가치다. 그렇지만 표현의 자유는 얼마든지 공격의 도구가 될 수 있고 '혐오'를 포함하거나 조장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일들이 법정으로 가곤 하는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누군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얘기할 때는 여러가지 보이지 않는 요인이 작용하는지도 분석해봐야 한다. 바로 문화적.종교적 차이, 사회적 주류와 비주류의 힘의 관계 등이다. 종교.문화적, 또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힘이 약한 집단이 상대적으로 강한 집단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면 그것은 독려해야 할 정당한 저항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상대적 강자 집단이 표현의 자유를 통해 상대적 약자 집단이 중요하고 민감하게 여기는 것을 가볍게 취급하고 조롱한다면 그것은 공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니 표현의 자유는 법적 정당성을 넘어 사회적 공감을 얻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특히 사회적 소수 및 약자 집단과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가 또는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된 집단 내에서 상식적이고 포용적인 다수보다 강경하고 급진적인 소수가 목소리를 내고 극단적 행동을 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보도된 기사들을 보면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사회적 힘의 관계와 종교.문화적 정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 만평은 모든 무슬림들이 불편해하고 공격이라 느낄 수 있는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담고 있다. 이건 적어도 논리적이지 않다.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고, 그래서 그들을 비난하는 무슬림들이 많음에도 무함마드를 극단주의자들 및 테러범들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접근은 당연히 이슬람 공동체와 무슬림 전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고 종교.문화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사회의 이슬람 공동체는 상대적 소수이고 거기에는 사회적 힘이 없는 이민자들이 많기 때문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무슬림들에 대한 주류 기독교 사회의 공격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테러범들 재판 시작을 기념해 논란과 소송의 대상이 됐던 만평들을 재발행한 결정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그것으로 인해 과거처럼 테러가 발생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또는 프랑스 사회 내 종교 간 갈등이 악화될 수도 있는데 그점을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프랑스 내에서 참수가 행해진 최악의 사건에 영향을 줬다. 프랑스 상황이 안타까운 건 한 쪽은 문화적 매개를 이용해 이슬람 공동체를 공격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비난하고 극히 일부지만 그중 몇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상호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사회적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권리는 누구를 공격하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공격적 방식이 아닌, 포용적인 방식으로 주장되고 행사되어야 한다. 특히 그것이 사회적 소수, 약자 집단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조심스럽게 행사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도 한 쪽은 표현의 자유를 말하지만 다른 쪽은 '혐오'와 '증오'로, 나아가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와 함께 사회적으로 부당하게 '공격당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표현의 자유도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공존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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