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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 대응이 문제야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8. 15. 10:55
무한 반복의 현실
사회갈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공공갈등이다. 공공갈등은 공공현안을 둘러싸고 생기는 갈등인데 정책, 법, 규제, 공공시설 입지나 건설 등이 주요 현안이다. 당사자들은 정부, 공공기관, 공기업, 지자체, 지역주민,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이다. 현안도 복잡하고 당사자들도 여럿이기 때문에 언뜻 봐도 복잡해 보이는 것이 공공갈등이다. 그래서 공공갈등은 가장 해결하기 힘든 갈등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절대 방치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 공공갈등이다. 영향의 범위가 넓고 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존까지 걸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이다. 민주사회로의 진전이 이뤄지고 시민이 정부에 절대 복종하지 않고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다. 재밌는 것은 이런 변화와 공공갈등의 증가가 미국사회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겪었던 것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시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 공공갈등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란 얘기다. 다만 미국사회는 기존의 사회적 경험, 자원, 접근 방식 등을 이용해 공공갈등에 대한 효율적 대응법을 점진적으로, 비교적 빠르게 만들어냈지만 우리는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이 다르다. 물론 아예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갈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현실 적용에는 아직 큰 효과가 없지만 정부,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서 꾸준히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어쨌든 고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는 공공갈등보다 한 쪽이 지는(대부분이 시민들이지만) 방식으로 일단락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도 비슷한 결말을 예고하는 많은 공공갈등이 진행 중이다.
공공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같은 방식의 전개와 일단락으로 무한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 공공기관, 공기업, 지자체 등 공공영역 주체들의 대응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이 변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내부 구조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은 그 특성상 갈등 현안을 제공하는(불가피한 일이지만) 이들 공공영역 주체들이 핵심 당사자로 다른 당사자보다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지역주민이나 일반시민보다 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전개를 좌우하기도 한다. 공공갈등의 발생, 전개, 해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당사자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으니 공공갈등도 예전 방식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설득은 이제 그만
그렇다고 모든 공공갈등의 악화 책임이 공공영역 주체들에게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갈등은 항상 상대가 있는 문제고, 특별히 공공갈등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이기 때문에 공공영역 주체들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대응 방식을 바꾸고 포용적 태도와 인내로 대응한다면 공공갈등의 전개 방식은 크게 변할 것이고 해결의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악화되는 갈등보다 일정 시간이 지나 해결의 길로 접어드는 갈등이 늘 것이다.
현재 공공영역 주체들의 갈등 대응을 보면 최선이 '설득'이고 최악이 '밀어붙이기'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이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깊이 고민을 했어도 결국 그런 결정 밖에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갈등의 대한 이해와 대응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설득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 밀어붙이기는 더욱 더 아니다. 솔직히 설득이나 밀어붙이기는 힘 있는 쪽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힘을 인지한 상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항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공공갈등이 분노와 비난이 증폭되는 전개를 겪는 이유다. 결국 갈등은 악화되면서 장기화되고 모든 당사자들은 힘든 시간을 겪게 된다. 이런 전개는 지역주민, 시민단체, 이익단체들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그들을 대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실무자들에게도 힘든 일이 된다.
공공영역 주체들은 설득이 가장 바람직하고 동시에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갈등을 야기한 공공현안이 법적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이 집행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공갈등은 법적으로 옳고 그름에 따라 발생 여부가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법적 테두리와 그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기본적으로 공공갈등에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러니 법적 정당성과 권한 주장만으로는 갈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도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런데 최선이라고 하는 설득은 그런 법적 정당성과 권한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 접근 자체가 상대의 인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공공영역 주체들이 '설득'에서 '대화'로 태도와 접근을 바꾸는 것만 해도 공공갈등은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곧 파괴적 전개의 지양과 해결 가능성의 확대를 말한다. 설득은 결국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틀림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설득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사 공공갈등의 시민 당사자들이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주장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이 시민의 권리라 생각한다면 설득 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갈등 이론을 들이대봐도 설득은 갈등에 대응하는 방법이 아니다. 갈등 대응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원칙적인 접근은 대화다. 어떤 당사자가 됐든 상대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갈등은 훨씬 덜 파괴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물론 해결 가능성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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