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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이제 사회갈등 완화를 고민해야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25. 4. 7. 10:07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던 사건 수습의 두 번째 단계가 끝났다. 수습의 첫 번째 단계는 국회의 탄핵 결의였다. 이제부터의 수습은 대선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 그리고 이와 동시에 계속될 윤석열과 공모자들에 대한 내란 재판과 처벌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사법적 절차들은 최소한의 수습에 불과하다. 우리가 직면할, 그리고 아직 어떻게 할지 구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비상계엄에서 윤석열 파면까지의 과정 동안 폭발하고 악화한 사회갈등이다.
비상계엄의 밤 이후부터 4개월여 동안 윤석열을 파면시키기 위한 정치적, 사법적 과정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들고 절망하게 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우리가 믿었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토대가 매우 허약했고 추구하는 민주사회의 모습과 원칙에 대한 생각이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동안 상식으로 여겨졌던 법치주의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역할에 대한 견해조차 달랐다. 다행히 민주사회의 보편적 상식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재확인되었다. 이제 탄핵 찬성과 반대의 대결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무마될 것이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대립이 강화되면서 다시 형성될 가능성이 있고 시간이 갈수록 범보수와 범진보의 대결로 고착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과연 다양한 견해를 포용하고 존중하면서 공존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진 출처: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www.bisang123.net
비상계엄과 윤석열 파면을 거치면서 우리는 새로운 특징을 가진 사회갈등을 경험했다. 특징 중 첫 번째는 갈등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한쪽은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했다면 다른 쪽은 대통령의 통치와 정치적 판단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생각했다. 이런 차이는 정상적인 민주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비상계엄조차 다르게 평가하는 결과를 낳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차이를 둘러싼 심각한 사회갈등이 형성됐다. 두 번째 특징은 기존의 정치 이념을 둘러싼 사회갈등과는 다르게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 사회갈등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한 물리적 폭력으로 사회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최악의 형태로 진화했다. 세 번째는 사회갈등이 주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 비난, 조롱 등을 동반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주로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특징은 우리가 직면한 사회갈등이 형태와 전개 방식에 있어서 심각한 상태이고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 위험 수위에 도달한 사회갈등을 방치하면 대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물리적 폭력과 극단의 언어폭력이 동반될 수 있고 파괴적 방식의 갈등 전개가 고착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직면한 사회갈등에 대한 대응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사회갈등은 사회 문제를 확인하고 바로잡고 변화 방향을 설정할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사회갈등은 부정적이지 않으며 사회 변화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사회갈등이 건설적으로 전개됐을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회갈등 발생의 계기로 사회적 숙고와 대화,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모색될 때 가능한데 이는 사회가 가진 역량에 좌우된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현재 직면한 사회갈등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갈등을 점진적으로 완화하고 그 과정 및 결과를 통해 사회적, 개인적 역량을 형성하고 향상하는 것이다.
현재 직면한 사회갈등 완화를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공존이 이뤄지고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사회적 변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민주시민 교육이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년, 노인 등 전 세대에 필요한 교육이다. 성평등 교육이나 인권교육을 하듯이 학교, 단체, 직장 등 모든 곳에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의무적으로 민주시민 교육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할 일은 혐오, 조롱, 욕설 같은 언어폭력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거부가 필요하다. 다문화 사회의 단체나 학교 등은 민족, 인종, 성별, 장애, 종교 등은 물론 결혼이나 임신 상태 등에 따른 차별, 괴롭힘, 혐오 등을 금지하고 평등과 포용을 원칙으로 삼는 정책과 내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엔 단호한 처벌이 따른다. 우리 사회도 공공영역은 물론 다양한 단체, 학교, 기업 등에서 이런 정책과 규율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접근의 효과는 최근 우리 사회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윤석열 탄핵 집회를 주도한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 대개혁 비상행동>은 집회 안내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비속어, 욕설, 차별적 행동 등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로 인해 대규모 인원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음에도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위협을 느끼지 않는 포용적이고 안전한 집회가 됐다. 민주시민 교육과 혐오와 차별에 대한 사회의 단호한 대응이 확산해야 우리가 직면한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현재의 불안한 상황을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건 이념갈등이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윤석열이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을 언급한 건 기함할 일이었고 이는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이념갈등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 중 주목할 부분으로 고착됐다. 긴 세월 동안 이념갈등 완화에 전혀 노력하지 않았던 정부와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고 비상계엄이라는 비극적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념갈등 완화는 여전히,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조기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면 다시 이념갈등을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에 대해 단호한 사회적 거부가 있어야 하고 이념을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의 이념은 극우 이념과 구분되어야 하고 북한 또는 남북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은 ‘종북 좌파 척결’ 같은 허상을 쫓는 극단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표명되어야 한다. 북한과 남북관계에 대한 유화적 접근 입장 또한 마찬가지다. 이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일상과 연결된 새로운 담론 형성 노력이 사회 곳곳에서 개인과 집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다시 정치가, 그리고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태도를 가진다면 상황은 악화하고 사회 변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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