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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사회갈등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25. 2. 27. 09:48
지난 2월 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의 원자료는 2023년 6-8월 19-75세 남녀 3,95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인 ‘2023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였다. 보고서는 원자료에 기반해 응답자 중 92.3%가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심한 것으로 답했다고 밝혔다. 이날 주요 신문은 모두 이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이건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정치적 이념과 입장에 따른 사회갈등이 심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이는 오랫동안 수치를 통해 확인되어왔다.
지난 1월 22일 발표된 <2024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6%가 ‘우리 사회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 내지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보통이다’와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은 각각 6.2%, 1.2%에 그쳤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8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였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는 2013년부터 해마다 이 조사를 하고 있다. 첫 조사 이래 2020년, 2021년, 2023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수치는 90% 초반을 나타냈다. 90% 이하를 나타낸 해도 2021년 88.7%, 2020년과 2023년 89.8%로 90%에 조금 못 미쳤을 뿐이다. 주목할 건 이번 조사 결과가 지금까지의 결과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 조사는 갈등의 심각성을 수치화해 10점에 가까울수록 갈등의 심각성을 나타내는데 평균 점수가 이번에 처음으로 8점을 넘어섰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1년 동안 평균 점수는 최저가 7.5점, 최대가 7.7점이었는데 이번에는 8.1점을 기록했다. 응답자 중 77%는 윤석열 정부에서 집단 갈등이 ’늘었다‘고 답해서 전년보다 14.4%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리고 65.7%가 ‘윤석열 정부가 야당이나 반대 세력과 소통과 협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갈등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건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지난 몇 년 동안 최고조에 달했다. 정치적 보수와 진보로 얘기하는 이유는 ‘진보’를 내세우는 정당과 ‘보수’를 내세우는 정당 지지자들 간 대립이 이념과 정치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정당 지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진보’ 또는 ‘보수’로 생각하는 사람들, 즉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진보’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보수’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간 대립은 거의 표출되지 않고 사회갈등으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사회는 흔히 중도층으로 불리는 이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들이 세력을 형성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그후 진행된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이제 헌재의 판단만 남겨놓고 있다.
비상계엄과 국회에서의 탄핵 소추안 통과 이후 사회갈등은 정치적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아니라 탄핵 찬성과 반대 간 갈등으로 변했다. 정당 지지에 따른 진보, 독립적 판단에 의한 진보와 일부 보수는 탄핵에 찬성하고 있고 대체로 극우 성향, 그리고 적극적 여당 지지 보수가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진 두 집단 간 대립은 광장과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건 두 집단 간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목할 건 탄핵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 보수들의 공격성과 반사회적이고 위법적인 행동이 심해지고 있고, 사회갈등이 파괴적으로 전개될 때 나타나곤 하는 물리적 힘을 동원한 공격과 사회시설 파괴가 실제 일어났기도 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것이 비상계엄 관련 수사와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법률기관에 가해지고 있다는 건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물리적 힘을 동원해 개인과 집단을 직접 공격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은 적어도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탄핵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이 난 후에도 정치와 이념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완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 탄핵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심각한 사회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정치적’ 진보와 ‘정치적’ 보수 간의 갈등이 격렬해지고 범진보 내 또는 범보수 내 갈등도 형성될 것이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의 목소리는 계엄 전 상황에서처럼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목소리와 충돌이 사회를 장악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갈등을 완화하고 갈등이 파괴적으로 폭발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정당 지지와 정치 이념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고 그런 사회는 오히려 위험하다. 이념과 생각이 다른 집단 또는 개인 간 갈등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굳이 해결을 위해 노력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념과 생각의 다름이 파괴적 갈등과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할 필요는 있다. 현재 우리 사회처럼 정치적 입장에 따른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혼란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사회적 제재와 상식을 가동해 파괴적인 갈등 전개, 다시 말해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 상호 공격을 최대한 막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 파괴와 혼란을 가져올 대립과 충돌을 막을 사회적 원칙을 만드는 것이다. 그 원칙들은 개인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공동체를 유지하며, 사회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몇 가지 사회적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경우에도 물리적 폭력, 협박, 폭력 선동, 혐오와 비하 발언 등은 거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피해자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 단호한 사회적 제재는 물론 강력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은 법치를 준수하는 것이다. 법은 완벽할 수 없고 법치가 사회 유지와 안전을 위한 완벽한 장치는 아니다. 하지만 법치는 사회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판단과 처벌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가짜 뉴스에 대한 단호한 법적 조치와 사회적 감시 및 제재 또한 이뤄져야 한다. 팩트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팩트를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만들고 유포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엄격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은 민주주의 체제와 민주적 사회를 훼손하거나 거부하는 주장과 행동은 사회적, 법적으로 강력하게 제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거 결과를 존중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사회적 원칙들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갈등이 전개되어야 갈등이 사회의 안위와 유지를 위협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수년 전만 해도 사회적 합의가 없이도 상식으로 통용됐던 것들이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고 위험하게도 이제 그런 상식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이를 재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원칙들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사회를 파괴하고 혼란을 야기하지 않게 할 수 있다. 또한 원칙들이 지켜져야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동시에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해 타인과 타집단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둘러싼 사회갈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 사회갈등을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공존의 사회를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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