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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예루살렘 총격 사건과 이스라엘의 '테러 프레임'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23. 1. 30. 12:03
지난 27일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있는 한 유대인교당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총격으로 7명의 이스라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총격범은 21세의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거주자로 현장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단독 범행인 것으로 보인다며 최악의 ‘테러 공격’ 중 하나라고 했다. 이 소식은 톱 국제뉴스가 됐고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정치인들이 메시지를 내고 우려를 표했다. 메시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범행을 비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 ‘진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짧은 메시지들에는 과거에 반복적으로 볼 수 있었듯이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과 보복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 긴장이 높아지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재집권한 극우 보수주의자인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강경’ 대응을 천명했으니 충분히 우려할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 사건의 여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세계는 긴장 속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국제뉴스는 위의 사건을 단독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실 이 사건 하루 전인 26일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북쪽에 있는 제닌의 난민 캠프 급습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군은 9명을 살해했는데 언론은 무장대원 7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동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주민 공격은 이스라엘군의 제닌 난민 캠프 공격에 대한 개인적 보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 사건 하루 후인 28일에는 동예루살렘에서 13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이 총을 쏴 이스라엘 주민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년은 현장에서 행인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CNN의 보도에 의하면 소년은 전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16세 소년의 이웃이었다. 16세 소년은 이틀 전 이스라엘 경찰의 총을 맞고 입원했었다. 이스라엘 경찰은 늘 그렇듯 소년의 공격 또한 ‘테러’라고 했다.
위의 세 사건과 언론의 보도, 그리고 국제사회의 반응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건 ‘테러 프레임’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공격을 모두 ‘테러’로 규정한다. ‘테러’는 막강한 힘을 가진 단어다. 어떤 사건이 테러로 규정되면 그것은 이해나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이유를 불문하고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최악의 비인도적인 범죄로 취급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공격을, 심지어 13세 소년의 공격조차 테러로 부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공격 행위의 인과관계에 대한 의문을 차단하고 무고한 이스라엘 주민들에 대한 악의적이고 적대적이고 비인도적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범죄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테러 프레임을 이용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테러에 항상 노출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려는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향후 이어질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대응과 살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기도 하다.
물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미화될 수도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만큼 긴 무력 분쟁과 충돌의 역사가 있고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과 핍박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이스라엘군의 억압과 공격과 살상이 있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범행을 테러 프레임으로 단순화시키긴 힘들다. 또한 팔레스타인 주민 개개인의 범행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조직적 행동과는 구분되어야 하고, 그런 범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직적 억압과 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 개인적 범행에 이스라엘이 과도하게 무력 대응을 하는 것은 문제고, 그를 빌미로 팔레스타인 전체에 대한 공격과 집단 처벌을 정당화하는 건 사건의 정치적 악용이다. 위 사건과 관련해서도 이스라엘 경찰은 범인의 집을 봉쇄하고 거주자들을 내쫓았으며 가족과 친척 등 42명을 체포했다. 보통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제사회, 그리고 언론조차 이스라엘의 테러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고 양비론에 기댄 보도를 하곤 한다. 강자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폭력과 팔레스타인 주민 개인이 저항 수단으로 선택한 범행이 같은 무게일 수 없고 그에 대해 같은 판단이 내려질 수 없음에도 말이다.
2022년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 주민들은 최악의 해를 보냈다. 거의 매일 이스라엘군의 급습, 수색, 체포 작전이 벌어졌다. 유엔은 2022년 한 해 동안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서 146명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2005년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였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공격으로 29명의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도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작전과 체포로 긴장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사망이 많아진 것이다. 2023년에 들어서도 벌써 3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군과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 상황이 이러니 세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과 유혈 상황이 발생할 것을, 그리고 전면적인 무력 충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폭력의 악순환을 만드는 근본원인은 전 세계가 이미 알고 있듯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과 핍박이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고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나서면 긴장과 충돌은 완화되고 이스라엘도 안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치는 계속 강경 우파가 장악하고 있고 그들은 오히려 긴장과 충돌을 이용한다. 이번 사건 이후에도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 대응과 정착촌 확대 강화를 천명했다. 사실 27일의 이스라엘 주민 살해 사건이 동예루살렘의 정착촌에서 일어난 사실은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흔히 그렇듯 정착촌 건설 후 주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했거나 이스라엘 주민들의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정착촌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부터 분노와 긴장이 형성되어 있었을 거란 얘기다. 정착촌 주민들의 공격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응 공격, 또는 상호 공격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정착촌 확대를 천명한 것이다. 그것이 국제법을 어기는 것임에도 정착촌 확장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으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 체포와 살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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