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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창조적 상상력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1. 9. 28. 09:53
내가 가장 좋아하고, 반복적으로 읽는 책 중 하나는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의 The Moral Imagination이다. 레더락은 평화갈등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이론가이자 실천가 중 한 명이다. 내가 대학원 때 가르침을 받았던 교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평화로운 공존의 사회를 위한 평화적 접근과 갈등해결 노력을 포괄하는 피스빌딩(peacebuilding)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두에서 이론이나 현장에 필요한 도구 같은 걸 제시할 목적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책은 평화롭지 않은 사회 상황의 이해와 분석에 중요하고도 유용한 도구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좋아하는 다른 중요한 이유는 매력적인 책 제목 때문이다. <도덕적 상상력>이란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책은 우리 사회, 그리고 세계의 변화를 위해 상상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상상력은 기술적 접근이나 도구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위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접근과 상상력을 말한다. ‘Moral imagination’은 사실 우리가 이해하는 ‘도덕적’ 상상력이기보다는 브리태니카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 이미지, 은유 등을 창조하고 활용하는 정신적 능력을 말한다. ‘moral’이 ‘정신적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니 이런 설명이 moral imagination을 해석하는 데 더 적합해 보인다. 어쨌든 이 책은 평화적 공존을 위한 사회 변화, 그리고 사회를 단절시키는 갈등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기술적 접근이나 공식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도전 과제에 뿌리를 두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상상해내는 능력(capacity to imagine something rooted in the challenges of the real world yet capable of giving birth to that which does not yet exist)”인 moral imagination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 책이 다시 내 눈에 들어온 건 얼마 전 남북관계에 대한 한 토론회 웹자보를 본 이후다. 그때 든 생각은 “남북관계나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많은 토론회나 강좌는 왜 학술적, 상황적 정보에 집중하지?”, “남북관계 변화와 한반도 평화를 좌우하는 건 정보인가?”, “정보를 알면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지나?”였다. 물론 정보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 토대 위에서 성찰과 주장을 하고, 변화를 모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북한과 관련해서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그게 반해 왜곡되고 악의적인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은 높아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가 핵심은 아니다. 정보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또한 남북관계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굳이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건 각 분야의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이 다루고 분석할 일이다. 그러면서 든 다른 질문은 “왜 토론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이 중심 주제가 되지 못하지?”, “사회적 비전을 만들고 국민적 상상력을 키울 방법을 찾는 건 전문적 토론이나 강좌의 주제가 되지 못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북관계에 대한 여론과 정치적 주장은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획득 여부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남북 공존의 미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에서 비롯되는데 말이다.
사회 변화를 원하는 연구자, 전문가, 활동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져야 할 건 미래에 대한 상상력, 다시 말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는” 상상력이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평화로운 한반도는 우리 모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니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이다. 우리의 역사, 과거, 사회적 담론과 서사, 현재의 상황 등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남북관계를,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동안 중.고등학생, 시민, 활동가, 교사 등 다양한 대상에게 강의를 했다. 그런 강의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 중 하나는 결국 ‘설득’이다. 평화적 공존을 위해 어떤 변화를 상상해야 하는지, 갈등을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하는지, 평화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왜 시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바람직하고 더 현실적인지를 얘기했다. 핵심은 결국 관계와 인간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계의 문제와 그것을 좌우하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탐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해야 한다. 관계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관계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과는 어떻게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질문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설득’은 의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인 면을 먼저 떠올리고 ‘현실적이지 않다’거나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데...’라고 말한다.
관계를 만드는 기본 접근은 접촉과 대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북한과 왜 대화를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현재 상황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한반도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 내지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는 평화적 접근을 떠나 세계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외교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화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한반도를 평화롭게 바꾸기 위한 다양한 대화 방식에 대한 상상력이다. 토론회와 강좌에서는 그런 얘기를 더 많이 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상상력에 대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기술 및 산업 발전을 위한 상상력은 독려하고 환영하지만 사회 변화에 대한 상상력은 저지하고 무시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 상상력에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런 상상력을 순진하거나 불순한 사람들의 조악한 주장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역사적 경험, 반복적 실망, 현실적 도전, 정치적.사회적 단절 등 복합적 이유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 부재는 결국 변화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고 현재 상황의 유지를 승인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지금처럼 적대적인 남북관계와 평화 없는 한반도가 유지되길 원하는가?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후 세대는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가?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이런 질문을 먼저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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