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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무서운 전염병 시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0. 4. 24. 09:24
전쟁 사망자보다 많은 코로나19 사망자
4월 23일 기준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약 256만 명이고 사망자는 약 18만 명이다. 이것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단 몇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믿지지 않는다. 세계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생명과 관련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전쟁이 단기간에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가장 많은 파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간혹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전쟁만큼의 사망자를 내진 않았다. 가장 최근의 사례인 1918-9년 사이 퍼진 스페인 독감의 사망자는 약 5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5-7천만 명으로 스페인 독감 사망자를 넘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아주 오래 전 일이고 사람들은 대체로 전쟁이 전염병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살아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우리는 전염병이 전쟁보다 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통계를 보면 이것이 단지 코로나19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검색을 해보니 2019년 무력충돌로 사망한 사람은 약 10만 6천 명이었다. 여기에는 만성적인 무력 대결 상황에서 발생하는 간혈적인 무력 충돌이나 공격으로 1-2명이 사망한 사례들, 그리고 멕시코의 마약전쟁이나 한 지역 내 부족 충돌 등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포함돼 있다. 전쟁이라 불릴 수 있는 무력 충돌로 인한 사망자만 따진다면 10만 명이 안 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몇 달 사이에 18만 명에 달했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세계가 직면한 또 다른 진실은 '전염병보다 굶주림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국가나 도시 봉쇄가 이어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상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부자 나라에서조차 가난한 사람들은 전염병보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수는 또 얼마나 많을지 모르지만 원인 규명의 복잡성 때문에 집계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봉쇄는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뉴노멀 시대의 국방예산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현재 우리 모두가 직면한 코로나19 상황은 이런 아주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전쟁이 아닌 전염병으로 인해 죽을 가능성이 더 높은 시대에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안전한 삶'을 규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안전한 삶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 안에서 야기된 위험에 처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위험에 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적으로 국가가 얼마나 안전을 보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안전에 대한 보장 수준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부 예산 중 보건.복지 예산과 국방예산이다.
2020년 보건.복지예산은 82조 8,203억원으로 작년보다 14.2% 증가했다. 보건.복지예산에는 보건 분야는 물론이고 저소득.취약계층 사회안전망, 차상위 청년계층 지원, 노인일자리 지원, 장애인 복지지원 등이 총망라돼 있다. 최근 들어 최고 증가율이라고 하지만 소득 불균형이 심해지고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사실 많이 부족한 예산이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2020년 국방예산은 50조 1,527억원으로 전년보다 7.4% 증가했다. 국방예산은 크게 전력운영과 방위력개선 비용으로 나뉜다. 전체 국방예산 중 약 33%인 16조 6,915원이 방위력개선비, 그러니까 첨단 무기를 구입하고 개발하는 데 사용된다. 정부는 방위력개선비를 계속 국방예산 중 30% 이상으로 유지하고 2023에는 36%까지 높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2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방위력개선비에서 7,120억원의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남는 방위력개선비 예산은 15조 9795억으로 거의 16조원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최소한 16조원 정도를 첨단 무기를 사들이고 개발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충분한 재원이 없어서 전체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줄건지, 하위 70%에게만 줄건지를 두고 한동안 정부와 여당 사이에서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말(new normal)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피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뉴노말은 무엇으로 진짜 안전한 삶을 규정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정부 재원을 써야 하는지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진짜 안전에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 또는 다른 국가들과의 적대관계 내지 무기경쟁 지속을 위해 투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앞에 닥친 뉴노말 시대에는 국가 간 싸움과 대결이 아닌 일상의 안전과 국가 간 공존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전쟁이나 무기가 아니라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거나 삶이 파괴될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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