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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공포와 혐오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20. 2. 24. 11:04
코로나19가 가져온 공포
2-3주 잘 방어하면 상황이 진정되리란 희망은 무참해 깨져 버렸다. 이제야 뒤돌아보니 우린 당시 후에 일어날 상황을 모른채 부질없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었다. 이제 희망은 고사하고 절망 속에서 어떻게 기어나오느냐가 코앞에 닥친 문제가 됐다. 중국을 보며 자부심을 느끼고, 중국계에 대한 인종차별을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억울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 모든 일이 우리의 걱정이 됐다. 정신 멀쩡하고 뉴스를 조금이라도 챙겨보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든 사람과 장소를 의심하고,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어디에 위험에 도사리고 있는지, 누가 감염자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건 '공포'다. 누구도 전체 상황과 향후 닥칠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공포는 가중된다.
코로나19라는 우리가 여전히 잘 알지 못하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한 가지 미션 수행을 시도한다. 바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 통제 불가능한 것을 어느 정도라도 통제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미션 수행을 위해 사람들은 한 가지라도 확실한 것을 찾아 지목하고 최대한 거기에 초점을 맞춰 자기 안의 공포를 다스리려고 한다. 방식은 지목된 대상을 구분하고 배제하며 딱지를 붙여 최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그것은 중국이었고 우한이었으며, 그 다음엔 15번 환자, 20번 환자, 우한 교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31번 환자와 신천지, 그리고 대구에까지 도달했다. 사람들은 원인을 제공한 그들을 마음껏 원망하고 저주한다. 온갖 혐오의 말을 퍼붓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사람에 대한 공포로 변하고 마침내 혐오가 확산되면서 또 다른 공포가 만들어지고 있다.
혐오 사회에 닥친 또 다른 혐오
코로나19와 관련된 혐오는 단지 이번 상황이 급박하고 중대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혐오는 우리 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자리잡고 있고 그래서 시시때때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것은 때로 난민을 향했고, 또 때로는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심지어 사회의 다수인 여성을 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우리의 일상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에 직면하면서 감염된 위험한 사람, 또는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을 타겟으로 찾은 것이다. 사회의 다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각종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두 가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쉽게 혐오하는 정서와 태도가 퍼져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혐오의 정서와 태도는 그냥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상이 달라질뿐 계속 어딘가에서 혐오가 분출되는 사회에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딱지'를 붙이고 혐오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야기된 공포와 혐오를 보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성'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 배려, 돌봄, 연민 등을 포함한다. 생존을 위해 부상당한 새끼조차 버리는 사자와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전례없는 전염병 확산 공포의 상황에서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본질인 인간성을 잃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욕하고 원망하고 싶은 감정이 치솟아도 각자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성찰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줄이고 나와 주변의 안전을 담보하는 노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를 벗어나도 쉽게 혐오를 표출하고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는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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