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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국가 지정과 비핵화의 비현실성, 핵무장의 현실성?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5. 3. 20. 11:28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을 놓고 원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핵심은 누구도 확실한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정부는 맨 처음 제기된 이유인 윤석렬 대통령과 일부 여당 정치인들, 그리고 일부 북한 연구자들의 자체 핵무장 주장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교부는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확실히 확인된 것이 아니라 추측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많은 언론과 정치인들은 현 정부 들어서 누적된 핵무장론을 가장 합리적인 이유로 주장하고 있다. 핵무장론은 윤석렬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확산했다 대통령의 핵무장 가능성 언급에 고무된 것인지 이에 동조하고 핵무장을 주장하는 토론회가 많이 열리기도 했다. 민감국가로 지정된 이유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4월 15일 발효가 임박한 결정을 되돌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핵무장론이 민감국가 지정의 이유였든 아니든 간에 이번 기회에 일부 여당 정치인들과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핵무장론이 실현 가능성이 없고 오히려 국제사회를 자극해 한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었고 비핵화가 불가능하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가장 비현실적이다. 미국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만일 그런데도 한국이 밀고 나간다면 모든 수단을 써서 압박을 가할 것이다. 미국뿐이 아니다. 대다수 선진국이 한국에 정치적, 경제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다른 국가들도 한국에 거리를 둘 가능성이 있다. 결국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건데 그래서 핵무장론은 비현실적이다. 한국은 미국의 불허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준위 핵폐기물(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처리 기술이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분리·농축할 수 있는 기술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은 재처리를 위해 1974년 체결된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 노력했지만 2015년 개정에서 미국은 해외 재처리만 허용했다. 이는 미국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여론의 높은 찬성률을 정당성의 근거 중 하나로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보통 말하는 70% 이상의 찬성률은 한때 그렇게 나왔을 뿐이다. 사실상 핵무기 개발에 대한 찬성률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낮아졌다. 1996년 미국의 랜드(RAND)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률이 91.2%를 기록했고 이 연구소가 3년 뒤 실시한 조사에서는 찬성률이 82.3%였다. 그러나 최근인 2020년대에 들어서는 그렇게 높은 찬성률이 나온 적은 없었다.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의하면 2021년 찬성률은 71.3%였는데 2022년에는 69%였고 23년에는 60.2%였다. 2023년 4월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매우 찬성’과 ‘찬성하는 편’을 합한 찬성률이 56.9%였고 반대는 40.8%였다. 202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통일연구원은 처음에는 단순하게 핵무기 보유 찬성과 반대만 물었다. 이때 찬성률은 60.2%였다. 그다음엔 우리가 핵무기 개발을 했을 때 직면할 수 있는 위기를 설명했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미국과의 동맹 파기와 그로 인한 안보 위협, 천문학적인 핵무기 개발 비용, 환경 파괴,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실추 등이었다. 그후 찬성과 반대를 묻자 찬성 비율은 37%로 대폭 낮아졌다.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나열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60%였다. 그러니 단순 질문과 응답으로 핵무기 찬성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건 조사의 허점을 이용한 왜곡이다.
비핵화가 현실성이 없으므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응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허용하지 않고 있고 그러므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자원도 확보할 수 없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현실성이 없다. 동시에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낮다. 그러니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정치적 이익, 또는 주장을 위한 주장을 위해 상황을 알면서도 우기거나 상황에 전혀 무지한 경우다.
핵무기금지조약(TPNW) 비준국과 서명국 (사진출처: ICAN/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 2021년 1월 22일 유엔의 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이 국제법으로 효력을 가지게 됐다. 조약에 서명했거나 비준을 끝냈거나 조약을 지지하는 국가를 합하면 전 세계 국가 중 약 70%가 핵무기에 반대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은 인류가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일로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인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핵화를 위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접근이다. 이웃 국가인 중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두려워하거나 문제로 삼지 않는 건 결국 북한의 핵무기가 관계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개선해야 하는 건 우리의 운명이고 생존이 걸린 문제기도 하다. 거기에 당연히 비핵화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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