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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토론, 무기가 답?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22. 2. 8. 16:02
20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2월 3일 네 명 후보들의 첫 토론이 있었다. 첫 토론이어서인지 깊이와 밀도가 부족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첫 질문은 “대통령에 취임하면 어떤 순서로 미국, 일본, 중국, 북한 정상을 만나겠냐?”는 진부한 질문이었다.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는 미국 대통령을 제일 먼저 만나겠다고 했고 이재명 후보는 상황에 따라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지만 역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상정 후보만 현재 상황을 고려해 북한과 먼저 대화하겠다고 했다. 이어진 토론은 자연스럽게 북한 문제로 이어졌지만 내용은 북한의 공격을 막기 위한 무기 체계 확보와 군비 증강에 초점이 맞춰졌다. 후보들은 경쟁하듯 북한을 제압할 최첨단 무기 체계에 대한 지식을 뽐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이번 토론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후보들이 남북 관계와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몹시 유감스러웠다. 첫 번째로 외교.안보 분야인데 토론의 초점은 전혀 외교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석열 후보의 사드 배치 주장을 반대하는 이재명 후보의 질문으로 시작된 토론은 결국 구시대적인 안보 프레임 안에서 진행됐다. 또한 북한을 제압할 무기 체계 확보와 강화를 토론했을 뿐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외교적 해법에 대한 토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외교적 대응은 군사적 대응에 우선되며 국제사회는 적대적 관계에서도 외교를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 토론회가 군사적 대응과 군비 증강에 맞춰진 건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두 번째로 사드 배치를 주장하고 이를 반격하는 토론에서 사드 배치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사드와 관련해선 배치 전에 효용성과 전자파 위험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고 정부는 한동안 배치 계획이 없다고 했다가 갑작스럽게 결정을 발표했다. 사드 배치지 또한 깊은 고민이나 지역과의 협의도 없이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이뤄졌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군 소성리 주민들은 저항을 계속하고 있고, 사드 기지로의 물자 이동 때마다 경찰은 저항하는 주민들을 강경 진압하고 있다. 사드와 관련해서는 가능성 있는 배치 지역의 언급 자체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큰 우려를 야기하는 민감한 문제다. 그럼에도 토론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무기 배치가 물리적인 환경에 변화를 야기하고 주변 지역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점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는 점은 무척 유감스럽다. 당장 사드 배치가 가능한 지역으로 언급된 평택, 논산, 계룡과 강원도 지역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방부는 7일 브리핑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계획하거나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임에도 안보 프레임을 이용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주장하는 건 더 유감스런 일이다.
세 번째로 북한을 남한을 공격할 기회만을 노리는 적으로 상정하고 북한과의 무력 대결을 강조함으로서 현 상황을 호도하고 국민 불안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북한과 군사적, 정치적 대립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2018년 세 차례 정상회담에서의 남북 합의와 남북군사합의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현재는 남.북, 북.미 사이 대화와 협상이 단절되어 있지만 대화 복구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일부 후보들은 무력 대결에 초점을 맞춰 안보 프레임을 강조했고 다른 후보들은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모두 대선에서 안보 프레임이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무기가 안보를 보장하지 않고,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군사적 대결만 강조하는 것이 우리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 나아가 국가 안보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국민의 일상의 안전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인간 안보다.
무기는 안보 상황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고 무기의 기능은 전쟁을 포함한 무력 충돌의 예방이다. 무기에만 의존하면 평화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 힘이 있어야 평화가 가능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전멸시켜 성취되는 평화는 없다. 게다가 북한에 대응할 우리의 군사력은 이미 충분하다. 국방예산 규모는 세계 10위고 군사력은 세계 6위다. 핵무기만 없을 뿐 온갖 최첨단 무기가 배치된 곳이 대한민국이다. 다른 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무기도 실제 사용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특히 미국을 압박하고 유리한 협상을 하기 위한 카드라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한반도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이다. 현재는 정체 상태지만 지난 남.북, 북.미 대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북한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그러니 대선 후보들이 고민할 것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그리고 남북 사이 접촉을 통해 남북 대화를 재개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음 토론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있길 기대해본다. 무기가 아닌 평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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