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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2년, 세계는 무엇을 배웠나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24. 2. 22. 18:26
우크라이나, 사면초가에 빠지다.
지난 2월 17일 우크라이나군은 최전선인 동부의 아우디이우카(Avdiivka)에서 퇴각했다. 아우디이우카는 2014년 이후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돈바스주와 경계에 있는 도시로 우크라이나는 전쟁 시작 이후 2년 동안 이곳을 뺏기지 않고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우크라이나군은 결국 이곳을 포기했다. 러시아군은 아우디이우카를 둘러싸고 공격을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 동부를 더 장악해가고 있다. 세계 언론은 우크라이나군의 아우디이우카 퇴각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여러 가지로 시사하고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강한 공격에서 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퇴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여러 불리한 상황을 말해준다. 가장 크게는 러시아의 공격이 강화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거기에 맞설 정도로 군사력이 강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발발 몇 개월 후부터 생각보다 약하지 않고 러시아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2022년 9월 말에는 러시아가 동부의 네 개 주를 합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네 개 주 모두에 진격했다. 11월에는 러시아에 합병된 헤르손 주의 주도인 헤르손을 탈환하기도 했다. 그후로 겨울이 와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우크라이나는 2023년 봄부터 대반격을 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쟁은 1년 이상 거의 소강상태다. 그러다 이번에 동부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곳에서 퇴각한 것이다.
CNN 보도에 의하면 퇴각 며칠 전 새로 임명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아우디이우카를 방문해 병력을 강화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깊숙이 전진하는 것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며칠 후 사방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군은 “지옥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11월부터 아우디이우카는 우크라이나군에게 최악의 격전지였다. 우크라이나군은 사방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으며 좁은 참호에 갇힌 채 전진하지 못했다. 12월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우디이우카 전투가 여러 면에서 “전체 전쟁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퇴각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동부의 영토를 계속 조금씩 잃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군의 퇴각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무기 지원 부족으로 곤경에 빠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초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우크라이나를 절대 러시아에게 넘겨줄 수 없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우크라이나를 지원했을 것이다. 어쨌든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은 러시아에 비하면 너무 열악해서 다른 국가들의 지원이 전쟁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미국은 2023년 12월 말까지 442억 달러(한화 약 59.7조원/1달러 1350원 기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이는 한국의 1년 국방예산과 거의 같다. 그 다음으로 많은 지원을 한 건 독일로 2024년 1월 초까지 278억 유로(한화 약 40조원/1유로 1440원 기준)를 지원했다. 영국은 2024년 1월 초까지 120억 파운드(한화 약 20조원/1파운드 1680원 기준)를 지원했다. 대부분은 무기 지원이지만 여기에는 인도주의 지원, 전쟁 범죄 조사, 지뢰 제거 등에 대한 지원도 포함됐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자기 일인 것처럼, 그리고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해 무기 지원을 했다. 그 외에도 미국에 협력하는 국가들과 심지어 기업들도 우크라이나에 총기부터 담배까지 다양한 군사 물자를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의 전쟁이 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동부의 네 개 주는 전쟁이 일어난지 7개월 만에 러시아에 합병됐고 아우디이우카 장악으로 이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로 더 전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더는 동아줄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 2월 7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막았다. 백악관은 하원을 통해 지원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지만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사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버거워하고 있고 이제는 지원할 돈도 무기도 거의 동이 난 상태다. 우크라이나에겐 미국이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생명줄이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현실적으로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 러시아는 아우디이우카 함락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예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의 영토라도 사수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계속 영토를 잃게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도 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 미국의 전쟁 경고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전쟁에도 대비하지 않은 점에 대한 노골적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측근들이 최소 4억 달러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외국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잘루즈니 군 총사령관을 지난 2월 8일 경질한 데 대한 비판도 높다.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기준으로 정전 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영토 탈환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정전 후 이뤄질 대선과 총선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자국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전쟁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대리전이라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거의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전쟁, 계속할 것인가
2월 24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지 2주이 되는 날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세계는 경악했고 분노했다. 물론 침공 전부터 계속 러시아 공격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우려가 나왔지만 세계인은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침공이 현실이 되자 세계인은 분노했다. 우크라이나의 방어전을 전폭 지지했고 진심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했다.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환영하고 정성껏 돌봤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전쟁은 길어졌고 난민이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난민 환영 분위기가 사라졌고 2022년 겨울부터 난민 수용 정책이 수정됐다.
전쟁은 너무 현실적인 일이어서 침략을 받은 쪽의 승리라는 ‘정의 실현’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침략한 강자에게 유리한 것이 전쟁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시작한 전쟁은 최대한 일찍 종식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종전 시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종전을 위한 평화회담은 2022년 3월 말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상대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얘기하며 종전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무기의 계속 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러시아를 응징하고 러시아의 서진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종전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경제적 타격을 거의 받지 않은 러시아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예고하고 있다.
2년 동안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곳의 전쟁이 전 세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세계 곳곳의 내전, 그리고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시리아 전쟁 등 지난 20-30년 동안 세계는 많은 전쟁을 목격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전쟁은 없었다.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계 최대의 밀 수출국이자 해바라기유 수출국이었고, 러시아가 유럽 천연가스 공급의 35%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이 모든 수출이 중단되거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세계는 식량 가격 상승과 물가 상승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건 빈곤국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주로 밀을 수입하던 빈곤국들에서 밀 가격은 50-80%까지 상승했다. 국제시장의 밀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 물가가 상승했다. 몇 백 퍼센트까지 물가가 오른 국가들도 많았다. 그때 오른 물가는 지금까지 하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를 좌우하고 전쟁과 종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세계인, 심지어 자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조차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다시 한번 외교가 실패하면 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한 곳의 전쟁이 전 세계에 영향을,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큰 교훈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을 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무력 사용과 심지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팽배했던 전쟁 담론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무력을 이용한 응징, 전쟁을 통한 정의 실현, 승리를 위한 전쟁, 전쟁을 통한 안보, 무력 증강 등을 주장하는 전쟁 담론은 전쟁이 전 세계에 미친 치명적 영향 하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전쟁 담론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었다.
세계는 2년 동안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팽배한 전쟁 담론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될 수는 없음을 깨달았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23년 10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하마스 제거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이 3만 명에 가까운 무고한 가자지구 주민의 목숨을 빼앗고 7만 명에 가까운 사람에게 부상을 입혔어도 말이다.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는 하마스의 시도와 다를 게 없는 데도 말이다. 아무리 전쟁 담론이 팽배하고 어느 정도 논리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적어도 한 가지는 생각해야 한다. 전쟁은 언젠가는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게 좋다. 그렇다고 세계가 우크라이나에 종전을 종용할 수는 없다. 그건 결국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2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는데 지금 전쟁을 끝내는 게 너무 억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우크라이나 국민 중에도 종전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전히 다수가 승리할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 여부는 신념이 아니라 무력이 결정한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쟁을 끝내면 결국 동부의 영토를 잃게 되는 것이고 유리한 입장에 선 러시아가 어떤 요구를 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자력으로 전쟁을 계속할 수 없고, 다른 국가들의 지원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종전을 위한 협상에 나서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사실 이미 러시아에 합병된 동부의 영토를 탈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히려 러시아가 더 동진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아는 난민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2024년 2월 중순 현재 전 세계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648만 명으로 전쟁 전 우크라이나 인구의 약 7분의 1에 해당한다. 국내 이주민까지 합치면 약 1천만 명의 피란민이 됐는데 이는 전쟁 전 인구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난민들은 본국 귀환을 원하지만 전쟁 때문에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힘들게 계속 난민으로 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대부분이 현재 사는 국가에 계속 머물 생각을 하고 있다. 2023년 유엔난민기구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있는 국가에 머물겠다고 답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86%에 달했다. 이 보고서는 2022년 조사에 근거한 것이니 전쟁이 길어진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아예 정착을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난민의 대부분은 동원령 때문에 남편, 아버지, 아들을 두고 떠나온 여성과 어린이들인데 전쟁이 끝나면 많은 남성이 가족에 합류하기 위해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를 떠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도 불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길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종전을 결심하는 이유는 더 싸우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야기되는 피해가 얻는 것보다 많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그렇다. 결국 종전을 위한 평화회담이 필요하다. 종전을 고려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최대한 러시아와 힘의 균형을 맞춰 평화회담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우크라이나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유리한 건 민간인과 군인의 피해를 더는 늘리지 않고, 더는 국가를 파괴하지 않고, 그리고 더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위한 대리전을 하지 않고 되도록 빨리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세계가 해야 하는 일도 전쟁이 아니라 종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우크라이나에, 그리고 미국에게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크라이나가, 그리고 세계가 사는 길이다. 전쟁을 계속할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막는 것이 안보를 위한 길이라고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이기든 러시아가 이기든 또 다른 전쟁의 불씨가 생길 뿐이다. 향후 무력 충돌 내지 전쟁의 가능성을 최대한 없애려면 평화협상을 통해 종전을 하고 외교를 통해 안보를 합의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인명 피해와 사회 파괴를 중단하고 심각해져 가는 정치적 혼란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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