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해결 연재 9 대화, 만만치 않지만...
대화 또는 논쟁, 그것이 문제
답은 나와 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불가피하다. 대화가 불가능하거나 현실적인 해답이 아닌 경우가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사자들 사이 적대감이 높고 사사건건 서로 비난하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대화해서 어떤 합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직접 대화가 힘들다면 도움을 줄 제3자를 중간에 내세워서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 물론 그것도 싫다면 대결을 지속시켜 갈등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모든 선택은 당사자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문제는 대화를 한다고 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는 경우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화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이고, 다른 하나는 대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대화, 그러니까 영어로 dialogue는 '함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냥 잡담을 나누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대화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갈등의 상대와 마주 앉아 어떤 식으로든 얘기만 하면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짜 대화가 아니라 자기 주장을 나열하고 자기 정당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한다.
더한 경우는 상대를 이겨볼 생각으로 쌈닭처럼 처음부터 벼슬을 세우고 공격을 하는 것이다. 선빵을 날려 주도권을 잡고 상대를 굴복시키면 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대화의 경험이 없거나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다. 그런데 그것은 대화가 아닐뿐만 아니라 그런 공격을 그냥 넘기는 사람은 없다. 이에 대한 상대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방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응 공격을 하는 것이다. 둘 다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갈등이 악화된다. 때문에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보면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욕구 때문에 논쟁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대화가 잘 될 수 있다.
대화, 기본조건의 탐색
대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고 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화에는 항상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한 쪽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때문에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본조건을 먼저 탐색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상대의 대화 의지와 준비 상태다. 이것은 어쨌든 마주 앉고 서로의 얘기를 들어본 후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상대가 가지고 있느냐이다. 그리고 해결을 위해 되도록 얘기를 잘 해보려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느냐이다. 그런 의지와 준비가 전혀 없다면 아직 대화의 시간이 도달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한다. 두 번째 조건은 상대가 대화를 할 수 있는 품성과 자세를 가졌느냐이다. 이것은 첫 번째 조건보다 충족되기 더 힘든 것일 수도 있다. 화를 잘 내고 공격적인 사람, 어떤 반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지나치게 경쟁적이어서 항상 이기려는 사람 등은 대화하기 정말 힘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대화 자리를 공격과 비난의 기회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아주 절실하거나 위기를 느끼지 않는 한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그런 상대가 자신의 기본 품성과 자세를 수정할만큼 절실한 상황이 만들어졌는지 따져봐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대화 의지와 준비 상태다. 상대가 당장 대화를 거부하고 비협조적이어도, 또는 대화 자리에 나오긴 했지만 매사 삐딱하게 굴더라도 인내하면서 대화를 시도하거나 유지할 수 있는지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절실하게 대화의 필요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대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쉽게 대화를 포기할 것이고 상대에게 실망 또는 반감만 가지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선택일 수도 있다.
대화에서 가장 주의할 것은 이상적인 대화의 형식이나 모습을 정해 놓고 그것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점잖고 예의 바른 방식을, 어떤 사람은 솔직하고 격의 없는 방식을 선호한다. 조직 생활이나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자제하는 것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때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솔직한 생각을 나누다보면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 자리에서는 그런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을 서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로는 굳건히 막힌 담이나 눈 앞의 큰 산을 넘기 위해 솔직한 생각과 감정의 표출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경험하고 나면 오히려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의 해결을 위한 필요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생각한 대화의 형식이나 모습이 아니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사실 생각과는 다른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