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갈등해결 연재 6 갈등과 힘

정주진 2016. 6. 17. 10:35

힘의 불균형, 그 불편한 진실

사람들 사이에는 흔히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힘의 원천은 여러 가지다. 나이, 성별, 가족배경, 민족배경 등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직급, 교육수준, 경제력, 정보, 인맥 등 후천적인 것들도 힘으로 작용한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런 '다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힘의 차이로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적극 활용하려 한다. 그런 상황 중 하나가 바로 갈등 상황이고 그래서 갈등은 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사자들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한지, 또는 반대로 힘이 어느 정도 균형잡혀 있는지가 갈등의 전개와 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힘의 불균형이 극심하면 갈등은 잘 생기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찍소리도 못하게 억압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약자가 문제를 언급할 정도의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자와 국민, 대기업과 하청기업, 고용주와 알바생 사이에는 쉽게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갈등이 생긴다면 그것은 약자가 변화를 위해 사활을 걸거나 오랜 준비를 통해 힘을 축적한 후 전략적으로 맞섰을 때다. 그래서 갈등은 약자의 전략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강자도 약자도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강자는 자신이 힘을 이용해 약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우려하고, 약자는 힘이 없음이 드러나면 강자가 상대해주지 않을까봐 우려한다. 힘의 차이 때문에 타협적이거나 수용적으로 보여질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는 대부분의 경우 힘의 차이가 존재하고 때로는 심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갈등을 제대로 전개하고 해결하려면 그런 힘의 불균형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힘의 균형, 가능한가?

갈등 당사자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최대한 이용해 유리한 방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약자 역시 할 수만 있다면 힘을 이용하려고 한다. 물론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 자세히 설명하면 힘의 불균형을 이용해 갈등에 대응하면 갈등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만 일단락되고 갈등은 계속된다. 새로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을 야기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관계나 구조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강자가 원한 결과가 생길 것이고 관계와 구조는 강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강화되거나 재편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강자에게도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변화의 필요 때문에 갈등을 만들었던 약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다음 번에는 더 강경한 방식으로 변화를 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번 갈등은 초반부터 강경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갈등을 잘 전개하고 해결하려면, 나아가 갈등을 변화의 기회로 만들려면 힘의 불균형을 깨야 한다. 그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자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결국 약자의 힘을 강화시킴으로서 가능해진다. 그러니 결국 두 가지가 말만 다를 뿐 같은 방법인 셈이다. 약자의 힘을 강화시키면 완전한 균형은 아닐지라도 강자가 약자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갈등 이론으로 설명하면 누구도 상대의 제재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래야만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전제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힘의 균형을 만드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정부나 공기업과 지역주민, 기업과 노조, 업주와 알바생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극복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가능하다. 힘은 상대적이고 누구도 절대적 강자거나 약자인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갈등에 직면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힘을 키우는데 주력한다. 그래서 주변의 지지나 지원을 구하고 여론이나 언론을 활용한다. 도와줄 수 있는 제삼자를 찾기도 한다. 약자가 어느 정도 힘을 키우면 강자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식하고 힘의 불균형을 깨는데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제한적으로나마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거나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결정권을 유보하고 공동의 결정 방법을 지지함으로써 힘을 분배하는 일 등이 생긴다.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사회에서도 종종 생기는 일이고 우리보다 발전된 사회에서는 자주 생기는 일이다. 강자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최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여론과 언론은 물론 주변의 비난에도 직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을 힘의 문제를 보는 것은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삭막하고 정치적으로 보는 접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힘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을 악용하는 일은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참다 못한 약자가 힘의 불균형을 깨기 위한 시도로 갈등을 만드는 경우 또한 매일 생긴다. 고부 갈등, 사제 갈등, 노사 갈등, 부부 갈등, 선후배 갈등 등이 모두 힘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갈등이 생겼을 때, 그리고 갈등을 해결할 때 힘의 관계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