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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물: 생명의 물, 지배의 물평화갈등 이야기 /국제평화 2018. 9. 7. 10:22
팔레스타인의 햇빛은 한국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습도가 낮아서인지 긴팔옷을 입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따갑다. 그런 날씨에 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생명수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뭄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수자원을 통제하고 그것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북쪽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와 난민 캠프 사람들은 올해 7월부터 8월 초까지 몇 주 동안 일주일에 2-3일 밖에 물을 공급받지 못했다. 그나마 수압이 낮아 큰돈을 들여 설치한 물탱크에 충분히 물을 저장할 수도 없었다. 샤워를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고 생수를 구입해도 뜨거운 여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사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가 반복해서 겪고 있는 일이다.
강렬한 햇빛과 사막 같은 풍경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만성적 물부족을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인 라말라는 런던보다 강수량이 많고, 웨스트뱅크의 동쪽에 있는 요단강과 산악지역 대수층의 수자원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수자원 지배로 팔레스타인은 수자원을 제대로 개발할 수도 활용할 수도 없다.
웨스트뱅크(서안지구) 상황
1967년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후 이스라엘은 거의 모든 팔레스타인 수자원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공동물위원회(Joint Water Committee/JWC)를 만들었지만 팔레스타인은 자유롭게 수자원에 접근할 수도 수자원을 개발할 수도 없다. 수자원 개발을 위해서는 JWC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 이스라엘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어서 승인을 받기가 힘들다.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의 수자원 프로젝트는 56% 밖에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스라엘 프로젝트는 물론 100% 승인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은 2010년 이후 JWC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1995년 오슬로 2차 조약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이 조약에 따라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의 산악지역 대수층 수자원의 71%를, 팔레스타인은 17%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사용률은 87%로 상승했고 팔레스타인의 사용률은 13%로 떨어졌다. 이 합의는 애초 5년 동안만 유효할 예정이었지만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허락된 수자원조차 개발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고의로 공사 허가를 지연시키거나 아예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5년 이후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인구는 두 배로 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조약이 허용한 수치의 75% 수자원 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제한 없이 수자원을 개발 및 이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 국립수자원회사인 메코로트(Mekorot)로부터 막대한 양의 물을 구입하고 있다.
그런데 메코로트에서 물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다. 메코로트는 이스라엘 정착촌 내에 있는 지역 저수지와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연결하는 파이프를 통해 물을 공급한다. 그런데 파이프와 수도망 상태가 좋지 않아 3분의 1 정도가 누수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파이프와 수도 시설 보수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허가 없이 건설됐다는 이유로 수도 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허가를 받을 수 없어 불법으로 건축될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뜨거운 봄이나 여름이 되면 팔레스타인의 물 사정은 훨씬 악화된다. 물 소비가 많아지는 계절에 유대인 정착민에게 우선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메코로트가 팔레스타인 마을에 공급하는 양을 대폭 줄이기 때문이다. 공급량이 줄면 수압이 약해지고, 그러면 물이 마을에 도달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 마을은 며칠에서 일주일까지 단수를 겪곤 한다. 수압이 낮아 저수지에서 먼 곳이나 고지대엔 아예 물 공급이 안 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상황이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수돗물보다 4-5배나 비싼 가격인 탱크로 운반되는 물을 사야 한다. 때문에 물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은 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웨스트뱅크의 정착민들, 그러니까 불법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1인당 1일 물소비는 평균 200-300리터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1인당 1일 물소비는 평균 73리터다. 이것은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하고 있는 최소한의 필요인 100리터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수도망에 전혀 연결되지 않아 일년 내내 비싼 가격에 물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C 구역에 있는 마을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이곳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물소비는 1인당 1일 20리터에 못 미친다. 웨스트뱅크의 61%를 차지하는 C 구역에는 3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중 10만 명 이상이 이스라엘의 불허로 수도망에 연결돼 있지 않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 정부와 정착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수자원 접근과 이용을 방해하고 있다. 수원지를 탈취하거나, 물탱크와 연못을 부수거나, 그에 대한 진입 자체를 막기도 한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마을을 떠나게 되고 이스라엘은 그 땅을 취하고 정착촌을 넓혀가고 있다.
그림 출처
https://www.aljazeera.com/news/2016/06/israel-water-tool-dominate-palestinians-160619062531348.html
가자지구 상황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의 봉쇄 하에 있는 가지지구의 사정은 ‘열악함’을 넘어선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물자의 반입을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거기에는 시멘트와 철을 비롯한 필수 건축 자재도 포함된다. 때문에 이스라엘의 크고 작은 폭격으로 파괴된 수도와 위생 시설을 보수할 수 없다. 1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수도망에 연결돼 있지도 않다.
가자지구는 해안지역 대수층의 수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자원은 과잉 이용과 폐수로 이미 오염된 상태다. 여기서 공급되는 물의 96% 이상은 안전하지 않아 식수로 부적절하다. 가자지구의 수자원 체계는 오래 전에 붕괴됐고 주민들은 물 사용을 줄이고 물을 구입하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구입하는 물도 68%가 오염돼 있어 질병 발생 위험이 높은 상황이다. 물 공급회사가 제대로 살균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시설을 보수할 자재를 들여올 수 없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2016년 통계에 의하면 가자지구에 공급되는 물 중 85.8%는 우물에서 끌어올린 것이고, 10.1%는 메코로트에서 자치정부가 구입한 물이며, 나머지는 사설회사가 담수화한 물이다. 이중 18%만 식수로서 안전한 수준이다. 또한 공급되는 물의 40%가 낡고 붕괴된 기반시설 때문에 소실되고 있다. 가자지구 사람들의 1인당 1일 물소비는 91.2리터로 여전히 세계보건기구의 100리터 수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소비하고 있는 물의 대부분이 식수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8년 8월 열린 세계물포럼(Global Water Forum)에 참가한 유니세프의 물과 공중위생 프로그램인 WASH(Water, Sanitation and Hygiene Program) 담당자는 가자지구 물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문가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도 정치적 결정 단계로 가면 진전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첫 번째 실질적인 해결책은 대규모 담수화 시설을 짓는 것이고, 두 번째 해결책은 가자지구가 동등하게 지역 수자원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로부터 다량의 물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수자원 공유는 결국 정치 문제의 일부로 취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의 정치
팔레스타인의 물 부족 문제는 결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으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의도와 연결돼 있다. 이스라엘은 다양한 지배 방식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억압 및 통제하고, 자산을 탈취하며,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견디지 못해 떠나도록 만들고 있다. 수자원을 통제하고 개발을 방해하고 물 공급을 제한하는 것도 결국은 이 목적과 연결돼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고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인구 비례를 변화시켜 향후 있을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 땅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미 인구 반전이 이뤄진 C 구역에서 더욱 이런 일이 노골화되고 있다.
물 문제는 식수와 생활용수의 부족은 물론이고 생계와 직결되는 농업용수 문제로도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자연자원인 물을 독점함으로서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부들은 농사에 가장 큰 장애물로 물 부족을 꼽고 있다. 2015년 유엔 자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농업용수 사용량은 이스라엘 농부들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불허로 농부들은 우물 공사를 할 수도 없다. 그 결과 웨스트뱅크 농지의 2.3%만이 관개시설에 연결돼 있고 이런 곳의 생산량이 전체 농산물 생산의 5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빗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아주 낮다. 관개시설에 의존하는 농지는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수확량이 15배나 높다고 한다. 농업과 물 문제는 결국 팔레스타인 경제 문제로도 이어진다. 유엔과 유럽연합은 이미 오래 전에 수자원 접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업용수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올리브 농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팔레스타인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한 올리브나무는 물이 부족한 곳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기 때문이다. 올리브는 팔레스타인 농작물 수확의 70%를 차지하고 약 8만 가구 이상이 올리브 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2017년 7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로 “레드-데드(Red-Dead)”담수화사업에 합의했다.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이 프로젝트는 홍해(Red Sea)와 사해(Dead Sea)의 물을 담수화하는 사업이다. 이 합의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3,200만 큐빅미터의 물을 팔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이 합의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전문가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수자원 개발과 사용을 막고, 그로 인한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물을 상업화해 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팔레스타인도 사해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는데 담수화한 그곳의 물을 팔레스타인에 팔면서 생색을 낸다는 것이다. 특별히 전문가들은 물을 공유할 천연자원이 아니라 기술적, 상업적으로 다뤄지는 소비품 취급을 하는 이스라엘의 태도를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다.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수자원에 대한 접근과 개발, 그리고 물이용 권리가 이스라엘의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인해 침해되면서 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물을 팔레스타인 지배와 억압을 강화하고, 나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사시키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보편적 상식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인 태도와 행위다. 물이 공유할 자원이며 물사용이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 권리라는 평범한 진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자료 참고 사이트
https://www.aljazeera.com/news/2016/06/israel-water-tool-dominate-palestinians-160619062531348.html
https://www.btselem.org/topic/water
http://www.worldbank.org/en/news/feature/2016/11/22/water-situation-alarming-in-gaza
https://www.aa.com.tr/en/middle-east/palestine-s-water-crisis-50-years-of-injustice/882105
http://unctad.org/en/PublicationsLibrary/gdsapp2015d1_en.pdf
https://www.haaretz.com/spotty-water-supply-plagues-east-j-lem-1.5265593
* 위 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orea) 팔레스타인 이뉴스 7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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